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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함께 읽으니 깊어졌다

지난 토요일 독서 모임에 다녀왔다. ‘한강 읽기 모임’이었다.   책을 많이 잘 읽고 싶은데 혼자는 한계가 있다. 읽다가 중단한 적이 많다. 수행하듯 읽으니 다른 재미있는 일에 치이기 일쑤다. 스스로 정한 목표치만 간신히 채우고 덮어버리곤 한다.   글을 쓰려 맘먹고부터 독서의 필요를 더욱 느끼고 있다. 어떻게 쓰는지 곁눈질했다. 고전을 읽으려 시도했다. 사람들이 살아낸 환경을 배우며 그네들을 이해하고 글 속의 주옥같은 표현도 닮고 싶었다.   읽을수록 내 부족한 점이 드러났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어렵게 읽은 책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해 아쉬웠다. 의지를 다해 읽어 내린 책은 곧 책꽂이에서 장식품이 됐고 나는 읽어냈다는 안도감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생각은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와 객관화 과정을 거친다. 타인의 말을 들으며 내 맘을 깨닫기도 한다, 동의하는 혹은 반대하는 대화를 통해 제대로 알아간다. 책 속에 나오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내 기준에 갇히기 쉽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고정된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설득하기도 하고 설득당하며 폭이 넓어진다. 타인과 더불어 배울 수 있어 참 좋다.   멀지 않은 곳에서 독서 모임이 열린다니 가슴 뛰는 일이었다. 신문을 통해 알고 오신 분이 대부분이었다. 관심 있는 분들과 작품을 중심으로 생각을 나누고 곁가지도 듣고 왔다. 선물 하나 들고 갔다가 두 손 가득 선물 받고 왔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로 모임을 했다. 작품 배경인 제주 4·3사건에 대한 자료를 공부하고 책도 꼼꼼히 읽어 갔다. 독서 토론 경험이 없는 나는 책에 밑줄 쳐가며 읽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의견을 말했다. 모임에는 제주에서 생활하신 분들이 있어 제주 살이에 대한 다양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집에 살더라도 각자의 부엌을 갖고 따로 살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독립적인 여성들의 삶이 놀라왔다.   한강 작가를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젊은 여성인 그녀에게 호기심이 일어 몇 편을 읽었다. ‘아버지 영향으로 문단에 쉬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라는 내 선입견은 사라졌으나 이상 문학상을 받은 ‘몽고반점’을 접하고는 난해한 작가라 여기고 그녀를 잊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그녀 책을 다시 보고 있다.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적 표현이 담긴 작품들에 유난히 마음이 끌린다.   한강 작가는 역사 뒤안길에서 잊혀져간 사람들 삶에 시선을 둔다. 나는 비겁하게 뒤로 빠져 적당히 살아가고 있으나 누군가 나와 주길 바랐다. 용기 있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승자들이 써 내려간 역사 안에서 그녀는 소시민을 어루만진다. 그녀 책을 읽음으로 그녀를 응원하기로 했다. 다음 독서 모임이 기다려진다. 한 달에 한 번, 오렌지글사랑에서 진행되는 이 모임에 관심 있는 분들 함께했으면 좋겠다. 김현실 / 수필가이 아침에 독서 모임 독서 토론 다음 독서

2025-06-11

[이 아침에] 오물에서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텃밭에 심은 복초이가 배추만큼 커졌다. 올해는 왜 이토록 실하게 자라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른 봄에 닭똥과 소똥을 주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나오는 계란 껍데기와 커피 찌꺼기도 썩혀서 같이 주었다고 하니, 역설적이지만, 배설물과 썩은 물질에서 생명이 쑥쑥 자란다는 말이 된다.   ‘오물에서 생명이 자란다.’   이 모순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간의 배설물에서 인간이 자란다는 블랙 코메디를 쓴 작가가 있다. 정보라 작가의 『머리』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작가는 시간 강사로 십 년을 일했던 자신의 모교를 고소했다. 이유는 부당 노동 착취다. 약자가 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법적 투쟁을 벌여서 승소했다.   처음 읽고 나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용인즉슨, 변기에서 매일 버린 오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변기에서 자라는 머리 비슷한 오물을 보고 기겁한다. 그 머리처럼 생긴 것은 몇십 년 동안 자라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다 자란 오물은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여자는 질색한다. “내가 왜 너의 어머니냐? 나는 너 같은 것을 낳은 적이 없다.”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 몸에서 나온 것을 매일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저의 어머니입니다.” 형상을 갖춘 오물이 어느 날 변기에서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여자의 몸은 이미 늙어 있었다. 가늘어진 머리칼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며 늙음을 한탄하는데,  자신의 젊은 모습이 변기 속에서 나왔다. 여자가 매일 내놓은 오물을 먹고 자란 여자는 아름답다.     ‘젊은 여자’는 발버둥치는 늙은 여자를 변기에 밀어 놓고, 변기 물을 내리고 뚜껑을 닫는다. 늙은 여자의 옷을 대신 입고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작가의 ‘저주토끼’라는 단편집은 2022년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3년에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외국에서 먼저 알려져서 국내에서 뒤늦게 인정을 받은 경우다.   우리는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몇십 년 동안 먹고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연인들은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고, 자식은 고심하여 선택한 식당에서 부모님을 대접한다. 일상과 경사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어디로 가는가. 다음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혼자 처리한다. 축제의 중심에 있었던 음식의 후처리 과정에서 간혹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는 젊은 시절을 대충 살고 나서는 순식간에 젊음이 사라졌다고 허무해 한다. 그녀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빠져나간 오물 사이로 소비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타난 생명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봄에는 유달리 비가 많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불평하면 남편은 반대로 말한다. “올해는 대박 날 거야.” 하면서 비를 귀한 손님처럼 반긴다. 비가 닭똥과 소똥을 땅속으로 깊이 넣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텃밭의 복초이는 배설물과 썩은 것을 먹고 오늘도 쑥쑥 자란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오물 오물 사이 사회 분위기 모순적 아이디어

2025-06-09

[이 아침에] 열림의 미학, 빛의 춤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한미여성회(KAWA) 미술사 수업 시간이었다. 감각과 공간, 움직임을 다루는 그의 예술 세계는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주었다. 작년부터 LA현대미술관(MOCA)에서 그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지난 메모리얼 데이 연휴 드디어 전시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MOCA라고 하기에 브로드 미술관 옆에 있는 곳인 줄 알고 네비게이션도 없이 당당히 가서, “엘리야슨 예약했습니다” 하고 QR 코드를 내미니 직원이 웃으며 “그 전시는 게펜 컨템포러리(MOCA의 별관)에서 열려요”라고 했다. 결국 다시 차를 몰았고 주차비만 두 번 들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길을 헤매는 그 시간조차 왠지 예술처럼 느껴졌다. 미술도 인생도, 모든 공간이 늘 우리가 예상한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두 번째 전시장, 게펜 컨템포러리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전시 제목 ‘OPEN’은 단지 문이 열렸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곳은 감각과 시선, 생각을 ‘열어주는’ 공간이었다. 엘리아슨은 묻는다. “나는 지금 느림에, 타인의 시선에, 나 자신에게 솔직한가?” 그 질문 앞에서 마음의 문이 하나 열리는 경험을 했다.   빛과 그림자, 색과 공간이 끊임없이 변하는 전시 안에서 나는 멈춰 선 채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무용수처럼. 나는 미술관에서 종종 그림 앞에서 춤을 춘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색과 선의 리듬에 몸이 자연스레 반응하는 것이다. 발레는 나만의 감상 방식이다. 엘리아슨의 작품 앞에서는 그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예술에 닿는 정당한 방식임을 느꼈다.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그가 말하는 듯했다.   전시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 3월, 한국 리움미술관에서 우연히 본 구석진 계단에 구조물이 사실 엘리아슨의 작품이라는 걸 나중에 미술사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감동이 이제는 이름과 의미를 가진 예술로 되살아났다는 사실. 알지 못한 채 느꼈던 감정이, 이해를 통해 더 깊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엘리야슨은 청소년 시절 브레이크댄스를 추던 무용수였다. 그의 작품에는 몸과 공간, 움직임의 감각이 살아 있다. 퍼포먼스와 빙하를 활용한 작업을 보면, 자연과 빛, 몸의 관계를 예술로 풀어내는 그의 철학이 느껴진다. 그는 말한다. “내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예술이다.” 그 말은 무용수인 나에게도 깊이와 닿았다. 내 춤도 그렇다. 무대 위에서의 움직임은 생각과 감정이 흘러나오는 하나의 형식이다. 나의 존재가 몸을 통해 표현될 때, 그것은 예술이 된다.   오늘 나는 ‘빛의 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춤, 내 삶, 내 예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내 곁에서 늘 사진과 영상을 찍어주는 남편이라는 조용한 동행자가 있다는 것. 예술의 길이 외롭지 않은 건 그 따뜻한 동반자 덕분이다.   나는 진발레스쿨의 ‘발사모(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에게 늘 미술사 수업을 권한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고, 춤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미술은 감각을 일깨우고, 무용은 그 감각을 몸으로 피워내는 예술이다.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삶을 더 풍요롭고 빛나게 가꿔 나간다. 누군가는 새롭게 눈을 뜨고, 누군가는 잊었던 날개를 되찾는다.그렇게 우리의 일상에도 예술의 기적은 조용히 깃든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 진 발레스쿨 원장이 아침에 미학 예술 세계 미술사 수업 공간 움직임

2025-06-04

[이 아침에] 역설적 이야기

텃밭에 심은 복초이가 배추만큼 커졌다. 올해는 왜 이토록 실하게 자라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른 봄에 닭똥과 소똥을 주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나오는 계란 껍질과 커피 찌꺼기도 썩혀서 같이 주었다고 하니, 역설적이지만, 배설물과 썩은 물질에서 생명이 쑥쑥 자란다는 말이 된다.     ‘오물에서 생명이 자란다.’ 그런데 이 모순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간의 배설물에서 인간이 자란다는 블랙 코메디를 쓴 작가가 있다. 정보라 작가의 『머리』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친구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반박했다. “소재가 신선하잖아. 본업은 작가고 취미가 시위하러 가는 거래.” “그래서 글이 그 모양이구나.” 친구의 혹평은 끝이 없었다. 작가는 시간 강사로 십 년을 일했던 자신의 모교를 고소했다. 이유는 부당 노동 착취다. 약자가 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법적 투쟁을벌여서 승소했다.     지금 친구와 논쟁하고 있는 이야기는 나도 처음 읽고 나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용인즉슨, 변기에서 매일 버린 오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변기에서 자라는 머리 비슷한 오물을 보고 기겁한다. 그 머리처럼 생긴 것은 가끔 변기 속에 나타나더니, 몇십 년 동안 자라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다 자란 오물은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여자는 질색한다. “내가 왜 너의 어머니냐? 나는 너 같은 것을 낳은 적이 없다.”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 몸에서 나온 것을 매일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저의 어머니입니다.” 형상을 갖춘 오물이 어느 날 변기에서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여자의 몸은 이미 늙어 있었다. 가늘어진 머리칼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며 늙음을 한탄하는데,  자신의 젊은 모습이 변기 속에서 나왔다. 여자가 매일 내놓은 오물을 먹고 자란 여자는 아름답다. ‘젊은 여자’는 발버둥 치는 늙은 여자를 변기에 밀어 놓고, 변기 물을 내리고 뚜껑을 닫는다. 늙은 여자의 옷을 대신 입고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정보라 작가가 대학에 다닐 1990년대 한국 사회는 괴담이 많이 떠돌았다. 어느 백화점 지하 화장실에 가면 여자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는 귀신은 마당 구석에 있는 변소에서 나온다고 했다. 밤에 화장실 가려고 시커먼 마당을 가로질러 변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머리털이 곤두서곤 했었다. 그때는 변소 밑에서 손이 나타나서 ‘빨간 손 줄까? 파란 손 줄까?’ 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집에 출몰하던 여자 귀신이 현대 사회로 진화한 다음에는 공공장소인 백화점으로 옮겨갔나 보다. 한국인의 무속 및 민담은 시대가 지나도 본질은 여전히 같다는 점이다. 작가의 ‘저주토끼’라는 단편집은 2022년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3년에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외국에서 먼저 알려져서 국내에서 뒤늦게 인정을 받은 경우다.     우리는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몇십 년 동안 먹고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연인들은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고, 자식은 고심하여 선택한 식당에서 부모님을 대접한다. 일상과 경사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어디로 가는가. 다음 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혼자 처리한다. 축제의 중심에 있었던 음식의 후처리 과정에서 간혹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는 젊은 시절을 대충 살고 나서는 순식간에 젊음이 사라졌다고 허무해 한다. 그녀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빠져나간 오물 사이로 소비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타난 생명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봄에는 유달리 비가 많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불평하면 남편은 반대로 말한다. “올해는 대박 날거야.” 하면서 비를 귀한 손님처럼 반긴다. 비가 닭똥과 소똥을 땅속으로 깊이 넣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텃밭의 복초이는 배설물과 썩은 것을 먹고 오늘도 쑥쑥 자란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이야기 역설 역설적 이야기 여자 귀신 가면 여자

2025-05-29

[이 아침에] 염색약 대신 택한 용기

머리 염색할 날짜를 훨씬 넘겼다. 흰 머리카락은 정수리, 뒤통수, 옆머리와 앞머리를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보였다. 흰머리에 다른 색깔을 입히기 위한 독한 염색약을 바르는 일을 더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알고 보니 별일이었다.   개성이랄 게 별다른 게 있나 생긴 대로 사는 게 개성이지.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았다거나 청결하지 않은 것은 문제겠지만 머리카락이 희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불쾌를 주거나 예의가 어긋나는 일이 내 생활에 있을까. 흰 머리카락을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별문제가 없지. 생각의 닻을 용기의 바다에 내려보기로 했다.   미용실에 들러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자르기만 할 뿐이어서 새로운 머리카락은 각자의 색깔대로 용기 있게 자라났다. 6개월쯤 지나니 머리 모양이 이상하게 달라졌다. 위에서부터 하얀색으로 변한 머리카락은 위아래 중구난방이다. 바가지를 머리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이 하얀색과 검은색이 반으로 나뉘었다.     “염색 안 하실 거예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던진다. 말끝에 매달린 관심들은 흰머리에 대한 일종의 낯섦과 옅은 거부감으로 내게 부딪혀 닿았다. 눈이 파랗고 코가 오뚝한 백인 할머니들은 백발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 흉내를 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 염색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도 어른들의 머리카락을 신경 써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의 얼굴 나이에 비해 머리카락은 인위적으로 검은 머리에 별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은발 머리를 고집하는 것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나는 얼굴보다 시간을 앞서 달리는 머리카락을 염색 안 할 거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고 나니 생긴 대로 살자던 마음도 휘청거린다. 휘청거리는 마음을 확인하듯 흰 머리카락을 들춰 본다. 옆머리를 보려고 좌우로 눈을 뾰족하게 뜬다. 앞머리에도 가닥가닥 흰 머리카락이 모여 있다. 휘청거리던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다.   몇 년 전 어느 모임에서 한 분이 은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뒤에서 보게 되었다. 머리카락 색깔도 은빛으로 빛났고 머리카락 영양 상태도 좋았고 머리카락 수도 많아 보기 좋았다. “나이 들수록 예뻐요”, “잘 생겼어요” 보다는 “어려보여요”가 기분 좋은 덕담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젊어 혹은 어려보이길 원한다. 이 사회는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 관대해서일까.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추고 눈가의 주름을 최대한 펴는 시술에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은 허공을 가르지도 못하는 비명이 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늙을 것이고 또 죽을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조금은 완곡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늙어가는 것을 피하지 말고 늙음으로써 새롭게 생긴 외모와 생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나이 듦이라는 단어에 대해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면 그 과정은 나이 듦이기 때문이다.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늙을수록 더 필요한 용기 같다. 내 흰머리를 받아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고 싫어하는 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양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염색약 용기 머리카락 색깔 머리카락 영양 머리카락 수도

2025-05-26

[이 아침에] 노라, 너는 지금 어디에

노라. 노라는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직장 동료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첫 직장. 신입사원은 일 년간 교습을 받고 통과해야 정식 사원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도와 가면서 혹독한 훈련을 함께 받았다. 동기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아이리스 계의 노라였다.   선한 갈색 눈동자를 한 삼십 대 중반의 노라는 늘 웃는 얼굴이었다. 강사가 질문할 때마다 막히지 않고 대답하며, 모르는 사항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트레이닝이 끝나갈 무렵, 그녀와 나는 상당히 친해졌다.   약간 펑퍼짐한 몸매의 그녀는 남편이 금발을 좋아한다며 항상 머리를 물들었다. 아기를 갖고 싶어했지만, 치과 의사인 그가 아이를 원치 않자, 애완용 개를 자기 아들이라 했다.   어느 날 아침 노라의 사무실로 우편이 배달되었다. 그 전날까지 함께 저녁 먹고 한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같이 출근한 남편이 보낸 이혼 서류였다.     나이 어린 히스패닉계의 간호사가 자기 아이를 가졌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오십을 바라보는 그녀에겐 큰 충격이었다. 일 년 동안의 이혼 소송에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우울증과 술에 빠졌다. 보다 못한 매니저가 6개월의 병가를 주었지만, 재출근 후 일주일 만에 사표를 냈다. 그 후로 노라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오랜만에 노라가 일했던 오피스에 들려서 일을 보고 차로 향했다. 저쪽에서 어떤 꾀죄죄한 옷을 입은 뚱뚱한 여자가 환히 웃으며 걸어왔다. 검게 썩어가는 누런 이가 햇빛에 반짝였다. 여기저기 색깔이 벗겨진 낡은 갈색 선글라스 너머로 90도가 넘는 이 더운 대낮에 행여 바람이라도 들어갈까 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얼굴엔 검버섯이 잔뜩 핀 여자. 한눈에 봐도 노라였다.     “리나”라고 부르면서 다가온 그녀는 반갑게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았다. 무심결에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눈을 꼭 감았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묻고, 우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헤어졌다.     잊히지 않는 죽음을 살아가는 노라의 뒷모습을 봤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노라를 보며 고작 내가 꺼낸 말은 “안 더운가!”였다. 또, ‘이 옷은 한번 빨아선 냄새가 가시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만함에 입안이 씁쓸해졌다. 그토록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던 그 여자, 다른 사람의 필요를 자상하게 채워주던 그 여자, 위트가 넘치던 내가 알던 노라는 어디로 갔을까.     문득 피천득의 ‘인연’이 떠오른다. 과거는 추억으로 새기고 마지막은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춘천의 소양강에는 못 가지만 대신 주마 비치에나 가야겠다. 모든 것을 품은 아름다운 바다를 보련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여자 위트 이혼 소송 갈색 선글라스

2025-05-19

[이 아침에] 5.18 최초의 희생자

5월이 열리면 어김없이 1980년 5월18일, 광주와 금남로, 망월동이 떠오른다.   망월동. 5.18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5.18 최초의 사망자 김경철씨도 그곳에 잠들어있다. 거기 누워있는 어느 죽음이 애통하지 않겠는가 마는 그의 죽음은 특히 듣는 이의 가슴을 후빈다.   김경철, 그는 스물여덟 살 청각장애인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사정을 말할 수도 없었는데, 수를 쓴다고 오해한 공수부대원들의 곤봉을 맞고 결국 사망했다.   45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그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 한 편을 썼다. 연작시 ‘5월의 한 풍경(17) - 5.18 최초의 희생자 김경철’이다.   ‘내 죄는 귀머거리 / 내 죄명은 귀머거리 // 80년 5월 그날,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방망이를 든 군인들이 몰려와 군홧발로 무작스럽게 걷어찼어요. 나는 머리를 움켜쥔 채 허깨비처럼 길바닥에 벌렁 넘어졌지요. 벌떼처럼 달려들어 매타작을 했어요. (중략) 박달나무 몽둥이가 내 머리 위에 소나기처럼 쏟아졌어요. 오-매 으째야쓰까 잉, 으째야쓰까 잉, 발을 동동 구르는 아줌마들의 겁에 질린 모습이 희미하게 스쳐갔어요. 내 스물여덟 청춘이 가.물.가.물 저물어 갔어요. 나는 자지러지게 울면서 소리, 소리, 질러댔지요. // 왜 때려, / 왜 때리냐고 / 이유나 알고 맞자고 이놈들아!’   죽은 자는 말없이 달을 보고 누워있는데 총을 들었던 자는 햇빛 아래 활보하고 있다. 반백 년 세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역사적 평가가 끝난 그때의 일을 왜곡하여 시비하는 사람도 있다.   이 아침에 생각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거대한 국가폭력 앞에 쓰러져간 개인의 생명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동학혁명, 3.1 독립운동, 제주 4.3, 보도연맹사건, 4.19, 5.18…. 근세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작가 한강이 했던 말을 기억해낸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일 수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렇지만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5월은 6월을 위한 징검다리이다. 징검다리는 조심 조심 건너야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새 땅에 도착할 것이다. 푸르름이 넘실대는, 6월을 기다린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희생자 희생자 김경철 사망자 김경철씨 금남로 망월동

2025-05-18

[이 아침에] 모르는 곳을 향하여

얼마 전, 코펜하겐 공항의 한 탑승구에 특별한 여행객들이 모였다. 이들의 여정이 남달랐던 이유는 ‘모르는 곳을 향하여’ 떠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를 알리는 탑승구 전광판에는 ‘유럽 내 미상의 목적지(Unknown Schengen)’라고 적혀 있었다. 이 비행기는 1985년 체결된 ‘솅겐(Schengen) 협정’에 따라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유럽 내 30여 국가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 중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 비행기였다.   승객은 물론, 기장을 제외한 승무원들조차 행선지를 모른 채 비행에 나설 정도로 도착지에 대한 보안이 철저했다. 이 비행기는 이륙 후 두 시간이 지나서야 목적지를 밝혔다. 비행기가 향하는 곳은 스페인의 중세 도시, 세비야였다. 여행을 마친 많은 이들이 세비야의 풍경보다, ‘모르는 곳을 향하여’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에 느꼈던 기대와 설렘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후기를 남겼다.   목적지를 모른 채 여행을 떠나는 미스터리 여행이 얼마나 인기였는지, 티켓은 발매 4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한 언론은 이 소식을 전하며 이런 미스터리 여행은 목적지의 비자 문제가 없는 유럽이나, 땅이 넓은 미국이나 호주의 국내선 여행에서나 가능하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여행이라고 하면서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를 했다.     “한국엔 없는 상품. 우리야 뭐… 나라와 국민 전체가 목적지 미상의 미스터리 여행을 하는 중일 수도?”   이 문장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정치, 불투명한 경제, 흐릿한 미래가 맞물린 현실에 대한 자조적 진단이었다. 전체가 목적지 미상의 미스터리 여행 중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이 이민자로 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우리가 찾은 미국은 표면상의 목적지였을 뿐, 그 너머에서 어떤 삶이 펼쳐질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스터리 여정이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코펜하겐에서 비행기를 탄 여행객들은 모르는 곳을 향하여 함께 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한 동료의식을 느꼈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낯선 세계를 향해 함께 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이들을 하나로 묶었다.     이민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민자는 각자의 사연과 꿈을 안고 익숙함을 떠나 모르는 곳을 향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이다. 이민자로 사는 우리는 모두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다르고, 생각의 방향도 서로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모르는 곳을 향한 여정에 함께하고 있다. 그 여행에 나선 이들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비방보다는 위로, 무관심보다 격려, 불신보다 신뢰로 서로를 감싸안아야 한다.     목적지는 여전히 불확실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서로 붙잡아 주는 그 순간, 이 길은 고단한 생존의 현장이 아니라 은혜의 여정이 될 것이다. 낯선 길일수록, 함께 걷는 이가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좋은 이민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모르는 곳을 향해 갈지언정 서로의 길이 되어줄 품 넓은 사람들과 함께하기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미스터리 여행 목적지 미상 국내선 여행

2025-05-18

[이 아침에] 예방주사를 맞다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나온 대사다. 내가 최근 아들과 겪은 일이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들은 최근 다니던 로펌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겼다. 일이 준 만큼 물론 보수도 줄었을 것이다.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혀 허덕이는 게 안쓰러웠다. 아이를 믿어서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성취도 중요하지만, 건강 해칠까 걱정했다. 5년을 버텼으니 할 만큼은 했다, 싶었다.   일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내 출판기념회에서 아들을 손님들에게 인사시켰다. 마침 한 분의 아들이 법대를 나와 대형 로펌에 다니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타와 춤을 배우러 다니고 회사의 인턴으로 만난 아가씨와 데이트도 하며 회사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뉴욕 사는 딸이 휴가로 2주간 LA 집에 온다는 소식에 구순 노모가 손녀딸을 볼 겸 한국에서 오셨다. 나는 먹을 것을 준비하러 부엌에 있느라 부자지간에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아빠와 언성이 높아지는 거 같더니 아들이 제집으로 가버렸다. 다정하고 속 깊은 아이로 알고 있었는데 가족에게 터놓을 수 없는 가슴속 응어리와 사무친 서운함이 많았나. 그렇다 해도 할머니까지 계신 자리를 박차고 나가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 얘기로는 출판기념회에서 자기가 비교당했다며 화를 냈단다. 예민한 건 알고 있지만 아이의 속 좁음이 남편을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아기 때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눈을 맞추면 세상을 모두 가진 양 행복했지. 아이 덕분에 으쓱하며 행복해지고, 겸손을 배우며 불행한 주위의 사람을 민감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어려서 예쁜 짓 한 걸로 평생 할 효도를 다 한 걸까.   자식에게 쏟아부은 정성을 희생으로 여기며 아이를 나의 분신으로 생각해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서운해 했다. 성공한 자식을 이민자의 트로피로 여기며 보험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어차피 부모의 품을 떠난 자식, 특히나 아들은 서운할 일만 남았을 터이니 미리 예방주사를 맞은 걸까.     자식이 부모에게서 독립하려고 애를 쓰듯 부모도 어느 순간 자식에게서 독립하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부모와 자식 각자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대가 그에게 족쇄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내 사랑이 그를 가둬 버리면 안 된다. 내 꿈이 사랑하는 이를 짓누르는 수레바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에 대한 믿음으로 그에게 자유를 주라. 내가 할 일은 그를 짓누르는 수레바퀴를 치워 주는 것.’(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중) 오래전에 읽은 구절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그나저나 ‘어머니날’을 잊은 건 아니겠지. 최숙희 / 수필가이 아침에 예방주사 자식 각자 순간 자식 최근 아들

2025-05-12

[이 아침에] 인생도 달걀 껍데기 벗기듯

어제저녁 맷돌에서 3시간 구웠다는 달걀 2개를 지인으로부터 받았다. 그 귀한 달걀을 챙겨주는 친구의 배려가 고맙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달걀 2개를 재봉틀 옆 공간에 놓고 앉아 껍질을 벗겼다. 달걀 속이 보통 달걀과 다르다. 하얀색이 아니고 누런 색이다. 씹는 맛도 물컹하지 않고 존득존득하다. 달걀을 보면서 기다림으로 채운 수고와 정성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배를 채우고 허기진 마음도 따뜻하게 한다.   달걀을 삶는 일은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삶은 달걀의 껍데기가 잘 벗겨지려면 냉장고에서 꺼낸 후 잠시 상온에 두어야 한다. 달걀 표면에 이슬이 송송 맺힐 즈음 끓는 물에 조심스럽게 집어넣고 7분쯤 끓이다가 찬물에 잠시 식힌 후 꺼내면 삶은 달걀이 완성된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쉽게 자라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방황하는 시기가 있다. 사춘기도 있고 힘들어할 때는 기다려야 한다. 인생이 쉽게 자라겠는가. 푹 삶는 기간도 있고 힘들게 지나야 하는 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함께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어야 함을 알게 된다.   톡톡 책상에 달걀을 두드린 후 껍데기를 벗기는데 오늘따라 잘 떨어지지 않는다. 출출한 배는 얼른 먹을 것을 달라며 보채건만 서두를수록 껍질은 조각이 난다. 껍질과 함께 흰 살점이 떨어진다. 달걀은 점점 곰보가 되어간다.   똑같은 조건으로 삶아도 그런 달걀이 하나씩은 있다. 달걀 모양을 지키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껍데기를 조각조각 벗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조각난 달걀 껍데기를 하나씩 천천히 벗기는 동안 사람들과의 관계가 떠오른다. 껍데기가 잘 떨어지는 달걀처럼 손발이 척척 맞거나 생각이 통하는 이들은 만남부터 즐겁다. 만남이 기다려지고 헤어질 때도 아쉬움이 남는다. 함께 만들어 내는 결과물도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토를 다는 이들은 만나기 전부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관계를 내팽개치지는 못하기에 힘을 빼고 느릿느릿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다. 부족한 부분을 안아가야 할 때도 있고 손해를 봐야 할 때도 있다. 단순한 공감을 넘어 진지한 소통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달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식이고 값도 싸고 영양은 풍부하고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었던 달걀이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값이 천정부지다. 지난 주말 마켓에 갔었는데 어느 중년 부인이 2팩 달걀을 카트에 넣었다가 1팩을 다시 내놓는 광경을 보았다.     오랫동안 양계장을 운영하는 남미 사람이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닭장 청소를 하는 사람에게 닭똥을 모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친절하게도 버리지 않고 쓰레기 비닐 백에 넣어 야무지게 묶어서 준다. 닭똥은 운반하기가 무겁고 냄새가 심하지만 채소밭에 뿌리면 깻잎이 손바닥보다 넓고 색깔이 진녹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닭을 그 자리에서 잡아 주기도 하고 달걀을 판매한다. 아침에 내놓으면 오후에는 없다. 주위 사람들이 바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닮은 하루를 살아내기가 생각처럼 녹록지 않다. 인내심으로 천천히 달걀의 껍데기를 벗기듯 촘촘한 하루를 살아내야만 한다. 때론 기다림을 배우고 때론 수고스러움을 익힌다. 어쩌면 내 손에 쥐어지는 것보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 버리는 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허기진 영혼을 채워 주는 삶은 달걀이 된다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호주머니의 두둑함보다 마음의 풍요로움이 행복지수가 높다. 행복은 소박하고 가까이에 있다. 양주희 / 수필가이 아침에 껍데기 인생 달걀 껍데기 보통 달걀 달걀 표면

2025-05-05

[이 아침에] 봄의 약속, 부활의 희망

해마다 이맘때 맞이하는 부활절은 만물이 소생하는 꽃 피는 봄과 함께 찾아온다. 올해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부활절 덕분에, 이미 땅은 새싹으로 푸르러졌고 나무가지마다 망울을 터뜨리거나 형형색색의 꽃을 피워냈다. 도심 주변의 나지막한 언덕에도 노란 유채꽃이 물결치듯 만발하여,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아름답고 살아있음이 벅찬 행복으로 다가서는 가슴 뛰는 계절이다.   어릴 적 산골 마을에서 자랐던 나는 봄이 오면 뒷산의 진달래와 마을 앞 시냇가의 노란 개나리꽃 속에서 마음껏 뛰놀았다. 자연의 품에 안긴 어린 강아지처럼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 때문일까, 매년 꽃 피는 봄에 맞이하는 부활절은 내게 유난히 특별한 기쁨을 안겨준다.   기나긴 겨울 한철 꽁꽁 얼어붙었던 동토를 뚫고 솟아나는 봄의 새싹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희망’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생명의 신비이자 ‘부활’의 생생한 상징이다. 불현듯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던 〈젊은 죄수〉에 대한 실제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젊은 시절, 그는 주먹 하나만 믿고 방황하며 거친 삶을 살다가 큰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왔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독방에서 절망하며 몸부림치던 그는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짧은 청춘을 이렇게 끝낼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화장실 구석에서, 그의 눈에 다 해어진 낡은 성경책 한 권이 들어왔다. 휴지 대용으로 쓰였는지 구약은 이미 찢겨 나가고 신약의 일부만 겨우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책 첫 장에 쓰인 구절이 그의 시선에 박혔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의 멍에를 가볍게 해주겠다’ (마태복음 11:28). 우연히 마주친 이 한 말씀이 그에게는 깊은 위로가 되고 뜨거운 은총이 되었다. 죽으려 가져온 노끈을 가슴에 안고 얼마나 서럽게 흐느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살아났다. 죽었다 생각하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기로 작정했다. 수년간의 수감 생활 동안 신구약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출소 후 우여곡절을 거쳐 신학대학에 들어가 결국 목회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얼어붙었던 인생의 절망을 뚫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이 전직 재소자의 이야기는 진실로 아름다운 ‘부활’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봄은 자연이 우리에게 ‘부활’의 신비를 알리는 계절이다. 계절의 상징인 ‘꽃’과 ‘나비’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죽은 듯 보였던 씨앗이 대지의 품속에서 새싹을 틔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어두운 고치 안에 갇혀 죽은 듯했던 애벌레는 허물을 벗고 찬란한 ‘나비’가 되어 세상으로 나온다. 이처럼 되살아난 새 생명체인 꽃과 나비는 이 세상에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이며, 우리가 맞이하게 될 부활의 기쁨과 환희, 그리고 아름다움의 전조라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죄와 죽음이라는 어두운 불안 속에 갇혀 움츠러들었던 인간의 삶은 2000년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대지의 흙처럼 포근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잉태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유한했던 우리의 존재가 아름답고 찬란한 ‘새 사람’으로 영원히 꽃피울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이 신비로운 은총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부활’의 기쁨이자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김재동 / 가톨릭 종신부제·수필가이 아침에 약속 부활 부활절 덕분 약속 부활 신구약 성경

2025-04-28

[이 아침에] 용기가 필요해

머리 염색할 날짜를 훨씬 넘겼다. 흰 머리카락은 정수리, 뒤통수, 옆머리와 앞머리를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보였다. 흰머리에 다른 색깔을 입히기 위한 독한 염색약을 바르는 일을 더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알고 보니 별일이었다.     개성이랄 게 별다른 게 있나 생긴 대로 사는 게 개성이지.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았다거나 청결하지 않은 것은 문제겠지만 머리카락이 희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불쾌를 주거나 예의가 어긋나는 일이 내 생활에 있을까. 흰 머리카락을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별문제가 없지. 생각의 닻을 용기의 바다에 내려 보기로 했다.   미용실에 들러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자르기만 할 뿐이어서 새로운 머리카락은 각자의 색깔대로 용기 있게 자라났다. 6개월쯤 지나니 머리 모양이 이상하게 달라졌다. 위에서부터 하얀색으로 변한 머리카락은 위아래 중구난방이다. 바가지를 머리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이 하얀색과 검은색이 반으로 나뉘었다. 염색 안 하실 거예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던진다. 말끝에 매달린 관심들은 흰머리에 대한 일종의 낯섦과 옅은 거부감으로 내게 부딪혀 닿았다. 눈이 파랗고 코가 오뚝한 백인 할머니들은 백발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 흉내를 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 염색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도 어른들의 머리카락을 신경 써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의 얼굴 나이에 비해 머리카락은 인위적으로 검은 머리에 별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은발 머리를 고집하는 것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나는 얼굴보다 시간을 앞서 달리는 머리카락을 염색 안 할 거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고 나니 생긴 대로 살자던 마음도 휘청거린다. 휘청거리는 마음을 확인하듯 흰 머리카락을 들춰 본다. 옆머리를 보려고 좌우로 눈을 뾰족하게 뜬다. 앞머리에도 가닥가닥 흰 머리카락이 모여 있다. 휘청거리던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다.     몇 년 전 어느 모임에서 한 분이 은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뒤에서 보게 되었다. 머리카락 색깔도 은빛으로 빛났고 머리카락 영양 상태도 좋았고 머리카락 수도 많아 보기 좋았는데 그분이 지나가는 얼굴을 보고 어울리지 않는 머리 모양이라고 했었다. 나이 들수록 예뻐요, 잘 생겼어요. 보다는 어려 보여 요가 기분 좋은 덕담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젊어 혹은 어려 보이길 원한다. 이 사회는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 관대해서일까.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추고 눈가의 주름을 최대한 펴는 시술에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은 허공을 가르지도 못하는 비명이 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늙을 것이고 또 죽을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조금은 완곡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늙어가는 것을 피하지 말고 늙음으로써 새롭게 생긴 외모와 생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모든 일에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나이 듦이라는 단어에 대해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면 그 과정은 나이 듦이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에 의한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늙을수록 더 필요한 용기 같다. 내 흰머리를 받아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고 싫어하는 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양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용기 머리카락 색깔 머리카락 영양 머리카락 수도

2025-04-22

[이 아침에] 한인 교회 분쟁, 해법은 사랑

한인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낯선 환경 속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부딪히기 쉬운 이들에게 교회는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한국과 달리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가 적은 이민 사회에서 사람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많은 이들이 이민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교회를 찾는다. 때로는 이러한 만남이 신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별한 연고가 없는 이민자들은 대개 집에서 가까운,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한인 교회를 찾게 된다. 한번 정착한 교회는 익숙함과 정 때문에 이사를 가더라도 쉽게 옮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한인타운의 유서 깊은 대형 교회를 수십 년째 다니고 있다. 오랜 시간 같은 교회를 다니는 동안, 나는 안타깝게도 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신도 간의 의견 다툼, 신도와 성직자 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일부는 교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분열의 중심에는 대개 교회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인타운의 상당수 대형 교회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교인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교회가 갈라서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며, 그 이면에는 어김없이 금전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이러한 갈등은 신문이나 뉴스에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내부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교회가 분열될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오랜 시간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온 교인들이 서로 등을 지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구역 안에서 교제하고 식사하며 믿음의 공동했다. 이러한 분열의 중심에는 대개 교회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인타운의 상당수 대형 교회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교인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교회가 갈라서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며, 그 이면에는 어김없이 금전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심지어 이러한 갈등이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내부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교회가 분열될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오랜 시간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온 교인들이 서로 등을 지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구역 안에서 교제하고 식사하며 믿음의 공동겪지 않는 교회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함께했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렸던 소중한 이들과 단절되지 않고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는 없을까. 교회가 추구하는 사랑 안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초대 교회였던 고린도 교회 역시 심각한 분쟁을 겪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도록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또한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라는 귀한 가르침을 남겼다.   교회의 분열은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누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갑작스럽게 헤어져야 하는 아픔과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아이들이 슬픔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일 것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교회 내의 다툼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서로 마주 앉아 사랑의 공동체로서 진솔하게 대화하고 화해한다면, 그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정호 / 수필가이 아침에 한인 교회 한인 교회 교회 재정 고린도 교회

2025-04-21

[이 아침에] 상실의 아픔을 함께 넘는 이들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가족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진정한 친구를 얻고, 또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값진 경험이다. 학창 시절, 순수한 열정 속에서 맺어진 인연은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자산이 된다.     오래전,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던 친구가 있었다.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안타깝게도 연락이 끊겼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어 오랜 시간 마음 한 켠에 그리움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팔순을 맞아 출판기념회를 겸한 잔치를 열게 되었는데, 기적처럼 60년 만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뉴욕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친구를 만났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살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다.   미국 이민 생활 중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만난 A권사는 흔치 않은 강인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분이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남편이 뒤늦게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개업한 병원이 번창하던 중 갑작스러운 췌장암으로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큰 충격과 슬픔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A권사에게 주변에서 홈스테이를 권유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유학 온 초중고등학생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고 헌신적으로 섬겨왔다. 팬데믹으로 인해 학생들이 입국하지 못하게 되면서 현재는 소수의 학생들만 돌보고 있다.   그녀는 남가주사랑의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그 교회 안에는 그녀처럼 배우자나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교인들이 많다고 한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한 ‘상실 회복’ 세미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이 세미나에 꾸준히 참석하여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큰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전 그녀의 집에서 제26회 ‘상실 회복’ 세미나를 연다면서 나를 초대했다. 부활절을 앞두고 감동을 주는 시를 부탁해, 나는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2세 자녀들도 참석하여 영어 시를 낭송하는 순서도 마련되었다. 정성껏 준비된 풍성한 음식으로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모두 배우자를 잃거나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임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상처를 더욱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그들은 고백했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 사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식을 부지런히 전해야 한다. 십자가와 천국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한 사명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김수영 / 수필가이 아침에 상실 상실 회복 세미나 프로그램 시간 마음

2025-04-20

[이 아침에] 초특급 시니어

내가 아는 어떤 분은 테크놀로지라면 머리를 흔든다. 카톡도 이메일도 하지 않는다. 멀리서 사는 아들은 아파트로 이사하라고 권유하지만, 그분은 오랫동안 사는 너른 뒷마당이 있는 집을 고집한다. 커다란 집에 혼자 사는 엄마가 불안하여, 아들은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고, 층계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나는 카톡을 못 하면 노후에 쓸쓸하다고 말했지만, 그분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한다. 내가 언제 만나자고 하면, 지인은 날짜를 기억하려고 몇 번 소리 내 중얼거린다. 나는 휴대폰 캘린더에 저장하면 얼마나 편한데 그러냐고 안타깝게 바라보곤 한다.     오늘은 모처럼 시내에서 그분을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한식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요즘 새로 생긴 핫하다는 베이커리를 찾아 들어갔다. 한국 분들 몇 분이 빵집의 아늑한 코너에서 앉아 있었다. 다들 머리는 하얗고 간단한 패딩을 입고 야무지게 여민 가방을 옆구리에 찼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우리가 아는 분들이었다. 15년 전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같이 들었던 분들이다. 그때 알았던 분들이 지금도 여전히 만나며 소녀들처럼 수다를 떨고 있다.     그분들은 오랜만에 만난 우리를 무척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갑자기 일행 중 한 분이 성큼 일어났다. 맛있는 빵이 진열된 카운터로 다가갔다. 고급스럽게 포장된 모찌를 5통 사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었다. 집에 가서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말라고 한다. 모찌를 먹으면서 친구들 생각하며 미소를 지으라고 한다. 서로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세월이 굳혀놓은 정이 찹쌀 모찌처럼 끈적거려서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분들은 여전히 기억이 또랑또랑했다. 버스 스케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 시니어 카드를 소지하고, 한두 블록은 걸어서 친구들을 만나러 나온다. 봄비가 질척거리고 바람이 냉랭한 오늘 같은 날도 서슴없이 외출한다.   나는 돌아오면서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노인이 기억을 잃어가는 이유는 나이 탓도 있지만, 꼭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한다. 휴대폰에 지나친 의존, 그로 인한 산만함, 그리고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한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도 해당한다. 화면을 보다 보면 광고가 뜨고 다른 링크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텍스트를 대충 보고 건너뛰는 경향이 있다. 집중하지 못하므로 산만해지고, 기억이 뇌 속에 입력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베이커리에서 만난 슈퍼 시니어들은 치매도 우울증도 도망갈 것 같은 기세다. 수시로 버스 타고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밤 공연도 함께 보러 다닌다. 외출하는 몇 시간 동안, 버스 시간, 장소 찾기, 지하철 노선, 차표 간수 등등을 챙겨야 한다. 그러면서 머릿속 회로는 왕성하게 연결된다.     오늘 같이 나온 지인은 3년 전에 남편이 돌아가셨다. 살아계실 때는 모든 일 처리를 남편이 해 주었다. 혼자 남은 엄마가 걱정스러워 엉엉 울던 아들에게 지인은 말했다. 이 집을 유지 관리 못 하면 팔겠다고 말이다. 아들과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그분은 휴대폰 대신에 자신의 기억에 의존했다. 새벽에 일어나 붓글씨를 쓰고, 낮에는 텃밭에 야채를 가꾸고, 큰 집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다. 가계부 정리도 손으로 하고 좋은 말을 읽거나 들으면 노트에 자주 적는다. 지인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카랑카랑해졌다. 오늘 시내를 같이 걸어보니 몸도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나는 가끔 나의 가까운 미래가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궁금해할 거 없다. 오늘 내가 하는 것이 곧 나의 5년 후, 10년 후 모습이다. 베이커리에서 만난 분들은 15년 전에 하던 것을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내 발로 어디든 다니는 이분들은 당당해 보였다.     편한 것을 택하지 말라. 어려운 길을 택하라. 나는 흰색 모찌를 한입 베어 물면서 중얼거렸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초특급 시니어 초특급 시니어 지하철 시니어 슈퍼 시니어들

2025-04-17

[이 아침에] 내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내 편

나이 들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것도 많다. 존경받지 않고 무시당하다고 서글퍼하지 마라. 존경도 위로도 가을 오후에 스치는 바람이다. 날아가는 방귀 잡고 시비거는 꼴이다. 무너지지 않고 도태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살아서 움직여라.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내 인생 내가 산다.   죽은 뒤에 후회할 일 있으면 지금 바로잡으면 된다. 나쁜 짓 많이 하다 죽으면 바가지로 욕먹을 텐데 변명도 못하고 싸울 수도 없어 속상할 게 뻔하다.     나이 들수록 용감해져야 한다. 주눅 들 필요 없다. ‘운명’이란 단어에 매달려 살았으면 큰 맘먹고 나이테 숫자만큼 힘찬 발길질로 ‘뻥’차서 날려 버려라.   골대 앞에서 내 공을 막을 사람은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 누구를 위해 목숨 걸고 살던 시절은 흘러갔다. 내가 없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뜬구름처럼 흘러갔다 해도 빛바랜 일기장을 펼치면 어제의 추억이 먼지처럼 켜켜이 남아있다. 이제 그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내 편이다. 남편 자식 친구 이웃, 명예와 물욕, 성공과 좌절, 행복과 불행마저도 타인의 방에서 손을 흔든다. 아무도 내 인생을 닦달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지 못한다. 나이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살아남았다.   눈물샘이 마르도록 절망으로 허우적거리던 모습을 인생이란 화폭에 그려 낸다면 비록 훈장은 받지 못해도 몇 개의 동메달은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발목 잡는 실수 범하지 말기를. 사랑이던 미움이던 함께한 순간은 축복이었다. 슬픔도 고통도 사랑의 꽃망울로 피어오른다.   치사하게 살지 않기로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은 싫으면 버린다. 떠난 사랑을 잊어버리듯 해묵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죽도록 사랑했던 시간도 아낌없이 떠나보낸다.   흉내 내지 않고, 고집 부리지 않고, 잘난 체하지말고,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생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사소한 일에 목 매달며 작은 일에 흥분하고 남 일에 참견하는 신경 끄고 소수의 정예 인원만 곁에 두면 사는 게 수월해진다.   자식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켜도 크게 유산 남길 처지도 아니면서 서운해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기로 한다.   인생은 싸워서 이기는 투쟁이 아니라 담담하게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길을 나 홀로 간다. 망설이지 말고 소풍 가듯 김밥 몇 줄 주머니에 넣고 길을 떠난다. 오늘이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도 별이 빛나는 길은 슬프지 않다. 간혹 멍 때리며 시간을 낭비해도 된다. 비어있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위로받는 시간인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은 망설이지 말고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고마운 사람에겐 예쁜 카드를 보낸다. 인사 못하고 떠날 수도 있으니까.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다듬고 정리하면 마음이 풍요롭고 살아갈 공간이 넓어진다. 부족한 것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넘치는 것들은 주워 담기 힘들다.     보잘것없는 것들이 소중한 무엇이 되면 멍에를 벗고 하늘 높이 나를 수 있다.   이제 늙을 일만 남았다 생각하면 늙다가 죽는다. 살아있는 소중한 시간을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면 자유가 인생을 충만케 하리라.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시간 나이테 숫자 남편 자식 좌절 행복

2025-04-16

[이 아침에] 따뜻한 이웃을 그리며

일을 나가려 차를 후진하며 좌우를 살핀다. 어깨 너머로 제인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 차에서 내렸다.   제인, 오랜만입니다, 인사를 했다. 그녀가 트레이드마크인 검정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환하게 웃는다. 걷기를 끝내고 오는 길인 성싶어 얼마나 걸었느냐고 물었다. 요즘엔 공원까지 다니기가 힘들어 1마일 거리에 있는 마켓 쪽으로 갔다 오는 길이란다. 무탈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한 집 건너에 사는 이웃이다. 7년 전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다. 오다가다 가끔 마주하는 그녀는 언제나 밝고 씩씩하다. 몇 살인지 궁금해 물은 적이 있다. 대답 대신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몇 살인지 더 궁금해졌다.   어느 날 집 앞에서 마주친 제인은 담소 중 뉴저지가 고향이고 열아홉 살 때 남편을 만나 LA로 왔다고 했다. 나는 그때가 몇 년도였는가를 물었더니 주저하지 않는 그녀의 답으로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올해 90세가 된다. 믿지 못할 만큼 꼿꼿하고 정신이 맑다. 그녀는 내가 나이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할 테다.   언젠가 막 집에 돌아와 차에서 내리는 내게 제인이 다가와 도와달라 했다. 피부과 의사가 등 뒤에 붙여준 밴디지를 바꿔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아 못하고 있단다. 그녀의 집으로 갔다. 남편과 함께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넓은 집안에 가득했다. 가족역사가 사진으로 걸려있었다. 제인의 젊은 리즈 시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에 목선까지 내려오는 진한 갈색 머리의 미녀. 미소가 봄 햇살처럼 싱그러웠다.   제인이 사진 속 가족을 소개했다. 그녀는 딸과 손녀를 가리켰다. 암으로 고생하는 딸과 유방에서 시작한 암세포가 온 뼛속으로 번져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손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살 만큼 살아온 자신이 대신 아파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 소식에 외로움이 짙어간다고도 했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가질 것 다 가져 복이 많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넉넉한 물질이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주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머지않아 마주할 나의 시간일 수도 있다.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 기반과 사회적 관계망은 약해지고 홀로라는 생각이 날 때면 어찌 쓸쓸하지 않겠는가.   아침에 일어나니 마음이 무거워 걷기를 내일로 미룰까 하다 걸었다고 제인이 말한다.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 나가고 싶지 않은 때 같이 걷자며 내 전화번호를 그녀 전화기에 입력했다. 남편 전화번호도 저장해주며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했다.   이웃에 관심을 갖는 일이 사생활 침해로 오해받을까 싶어 지금껏 그들을 소 닭 보듯 지나쳤다. 이 아침에 다짐한다. 내가 먼저 변해야겠다고. 데면데면한 ‘옆집’이 아닌 언제라도 문이 열려있어 소통 가능한 따뜻한 ‘이웃’이 되어야겠다고. 이정숙 / 수필가이 아침에 이웃 남편 전화번호 피부과 의사 검정 카우보이모자

2025-04-14

[이 아침에] 불면의 밤, 파면 그 후

지난 몇 달 동안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이젠 끝나나 보다 기대했는데 무산이 되어버렸다.   미국국적의 내가 한국정치에 무에 그리 관심이 있었으랴만, 조국의 일이며 형제 친지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성질은 급한데 헌재의 결정은 부지하세월이라 불안하여 한동안 일손을 놓았다. 글이 써지질 않아 잡지사 기고문도 신문 칼럼도 순서가 뒤처졌다.   독서도 멀리하고 드라마와 영화에도 눈이 안 갔다. 현실이 더 극적이고 피를 말리는데 이런 스토리를 어디에서 체험한 단말인가?     유튜브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으면서 열불 나는 시간을 보냈다. 오래된 선배님들과의 친목모임에 가서는 한국정치이야기를 하다 서로 얼굴을 붉혔다. 식당에서 나와 주차장에서 연장전을 하시는 선배님들을 뒤로하고 빠져나왔는데 집에 온 뒤로 카톡으로 서로 사과하느라 반나절이 갔다. 밥 먹고 토론하느라 반나절 집에 돌아와 반나절이니 하루 꼬박 머리가 아팠다.   그 일 이후론 친목 모임에 나가 시작 전에 미리 이야기했다. 제발 오늘 이 시간만큼은 정치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초조하게 디데이를 기다리고 내심 기대도 했건만 내 생각과는 먼 뜻밖의 결과에 가슴이 무너졌다. 분하고 속상한 건 어느 한쪽의 일이 아니니 온 나라의 절반은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한 가지 이번에 배웠다면 남에게 너무 상처받지도 말고, 남으로부터 너무 기대하지도 말 것.   파면이 되고 난 후의 시국이 걱정되어 또 한밤의 불면의 밤을 보냈다. 실향민 부모 슬하에서 자란 우리 형제들은, 공산당이니 빨갱이니, 좌파라는 단어에 우선 경기를 일으킨다. 이북출신으로 신원특이자였던 아버지가 받은 차별(연좌제)을 일찍이 경험한 터였다. 남동생 셋은 대학 때 ROTC를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신문사에 재직 시 선배였던 선우 휘 선생의 추천서를 붙였어도 효과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 또 하시며 우리에게 미안해 하셨다. 아버지가 실향민인 것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니건만 그땐 그랬다. 그 뒤론 더 공산당에 반감을 갖고 좌파의 모임이나 데모에는 참여 않고 몸조심을 하는 집안의 내력이 있다.   대한민국의 연좌제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기본권과도 충돌을 빚게 되는 문제점이 인식되어 1980년 헌법은 제12조 3항에서 연좌제 폐지를 헌법적 요청으로 규정하였고, 1981년 3월 25일부터 폐지되었으나 동생들에겐 너무 늦은 일이었다.   대한민국이 ‘적화’되면 어쩔까 싶어서 탄핵 파면 후에는 더 불안했다. 이건 윤가인지 이가인지 인물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40년 전에 떠나온 내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서이다.   대한민국에 주님의 가호가 떠나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요즈음이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불면 파면 동안 불면 연좌제 폐지 헌법적 요청

2025-04-07

[이 아침에]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전성기

쓸데없다 싶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당신의 인생 중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그런 질문을 왜 하느냐고 핀잔하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자신의 삶과 생각을 술술 풀어 놓는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 하듯 인생도 그렇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게 때로 필요할 성싶다.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20대라고 하는 분이 많았다. 뭐든 이룰 것 같은 희망이 있어 좋았으리라.   20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미래를 단단히 준비하고 싶다. 막연히 잘될 거라 믿으며 나태하게 사는 나를 꾸짖고 공부하겠다. 행정학 전공자로서 공무원 시험 준비도 하고 한 발 한 발 커리어를 쌓을 것이다. 내 두 발로 서서 정서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리라. 아쉬움마저 그리움으로 남으니 나름 괜찮은 청춘을 통과했다고 스스로 토닥여 준다.   아이들 키울 때는 하루하루 바빴으며 죽순처럼 커가는 애들 모습에 웃음이 만발하던 시기였다. 아이들 학교 간 시간에 일을 하고 하교 시간에 맞춰 달려가 픽업했다. 운전하며 라디오를 듣곤 했는데 방송에서 나온 말이 가슴에 남았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를 생각해 보라 했다. 여성의 경우는 32세에서 35세며 남성은 35세에서 38세 정도라 했는데, 그 근거를 뭐라 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가정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미래를 설계할 젊음이 있어 좋다고 하지 않았을까.   일용할 양식을 위해 땀 흘리며 아이들이 성인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기까지 쉽지 않았다. 그 길에 꽃밭만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눈물을 수없이 받아내며 40, 50대를 통과했다.   백세 시대를 맞아 105세 된 김형석 교수에게 시선이 간다. 그의 저서 ‘백 년을 살아보니’는 베스트셀러 코너에 한창 머물렀다. ‘백세 철학자의 행복론’ 등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는 백세를 살아보니 60대, 65세가 가장 행복했고 빛났다고 토로한다. 글을 잘 썼고 생각하는 힘도 고매했다고 고백한다. 어느덧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가장 행복하다는 나이라는데 공감한다.   최근 일이다. ESL 수업을 같이 받는 70대 언니들에게 물었다. 전성기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은퇴하고 공부하는 지금이 좋다며 함박웃음을 건넸다. 건강이 허락하여 다양한 취미 활동과 함께 오롯이 당신 삶에 집중하는 지금이 좋단다.   과실나무는 열매 맺을 때가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인생 열매 맺는 노년기가 가장 가치 있는 때라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환갑을 치르고 난 후, 나는 노년기를 준비하는 한 살배기라고 주위에 말하곤 한다. 마주하는 좋은 때, 노년기를 잘 가꾸려 한다. 나답게 살아갈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사용하려 한다. 실패와 시행착오마저 끌어안으며 전성기로 펼치려 한다. 70세를 넘기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를 영상으로 만났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멋지게 연주하는 90세를 훌쩍 넘긴 그분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인생은 늘 ‘ing’,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전성기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김현실 / 수필가이 아침에 전성기 백세 철학자 하교 시간 베스트셀러 코너

2025-04-06

[이 아침에]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는다

지난 주일,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했다. 50대에 신자가 된 후, 매년 한두 차례 하는 일이다. 고해성사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지난 삶과 언행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잘못한 일들을 깨닫고(성찰), 뉘우치며(통회),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고(결심), 신부님에게 나의 죄를 고백하고(고백), 죄 사함을 받은 다음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보속) 받는 것이다. 고해성사를 보고 하느님에게서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었으면 적절한 보상과 용서를 구해야 한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그 후에는 다소 회의적인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보곤 했는데, 최근에는 기쁜 마음으로 고해소에 들어간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신부님에게 낱낱이 고백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진심으로 죄를 깨달아 죄지은 이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죄사함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과연 무엇이 죄인가. 이건 사람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 도울 수 있는데 돕지 않은 것, 남들 앞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생각이나 행동 등이 모두 죄가 아닌가 싶다.   자녀가 여럿이다 보니 모두 늘 좋을 수만은 없다. 가끔은 섭섭한 일도 생기고, 그래서 한동안 소원해지기도 한다. 요즘은 이런 일이 생기면, 그저 “내 탓이요”하고 만다. 사실이 그렇다. 내가 부모 된 도리를 잘했어야 하는데, 뭔가 심기를 건드리는 언행을 했으니 자녀가 내게 섭섭함을 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웃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이러쿵저러쿵하면 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묵은 죄를 생각하다 보면 용서를 구해야 하는 당사자를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친절과 관용을 베푸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나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죄를 짓고 산다. 그러니 내게 상처를 입히고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다. 변상과 사과를 받고 싶지만 상대방은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태도를 보인다면?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의 죄를 용서해야, 나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남을 용서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일이다. 용서하지 않은 일은 늘 마음에 남아 나를 괴롭힌다. 그 일을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용서하고 잊는 것이 최선이다.   얼마 전 차고 공사를 하며 아내가 이런저런 물건을 많이 정리했다. 차고가 넓어졌다. 내게 고해성사는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으며 마음에 남아 있는 앙금을 털어낸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용서 한동안 소원하어지기 변상과 사과 차고 공사

202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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