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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봄의 약속, 부활의 희망

해마다 이맘때 맞이하는 부활절은 만물이 소생하는 꽃 피는 봄과 함께 찾아온다. 올해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부활절 덕분에, 이미 땅은 새싹으로 푸르러졌고 나무가지마다 망울을 터뜨리거나 형형색색의 꽃을 피워냈다. 도심 주변의 나지막한 언덕에도 노란 유채꽃이 물결치듯 만발하여,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아름답고 살아있음이 벅찬 행복으로 다가서는 가슴 뛰는 계절이다.   어릴 적 산골 마을에서 자랐던 나는 봄이 오면 뒷산의 진달래와 마을 앞 시냇가의 노란 개나리꽃 속에서 마음껏 뛰놀았다. 자연의 품에 안긴 어린 강아지처럼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 때문일까, 매년 꽃 피는 봄에 맞이하는 부활절은 내게 유난히 특별한 기쁨을 안겨준다.   기나긴 겨울 한철 꽁꽁 얼어붙었던 동토를 뚫고 솟아나는 봄의 새싹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희망’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생명의 신비이자 ‘부활’의 생생한 상징이다. 불현듯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던 〈젊은 죄수〉에 대한 실제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젊은 시절, 그는 주먹 하나만 믿고 방황하며 거친 삶을 살다가 큰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왔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독방에서 절망하며 몸부림치던 그는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짧은 청춘을 이렇게 끝낼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화장실 구석에서, 그의 눈에 다 해어진 낡은 성경책 한 권이 들어왔다. 휴지 대용으로 쓰였는지 구약은 이미 찢겨 나가고 신약의 일부만 겨우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책 첫 장에 쓰인 구절이 그의 시선에 박혔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의 멍에를 가볍게 해주겠다’ (마태복음 11:28). 우연히 마주친 이 한 말씀이 그에게는 깊은 위로가 되고 뜨거운 은총이 되었다. 죽으려 가져온 노끈을 가슴에 안고 얼마나 서럽게 흐느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살아났다. 죽었다 생각하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기로 작정했다. 수년간의 수감 생활 동안 신구약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출소 후 우여곡절을 거쳐 신학대학에 들어가 결국 목회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얼어붙었던 인생의 절망을 뚫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이 전직 재소자의 이야기는 진실로 아름다운 ‘부활’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봄은 자연이 우리에게 ‘부활’의 신비를 알리는 계절이다. 계절의 상징인 ‘꽃’과 ‘나비’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죽은 듯 보였던 씨앗이 대지의 품속에서 새싹을 틔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어두운 고치 안에 갇혀 죽은 듯했던 애벌레는 허물을 벗고 찬란한 ‘나비’가 되어 세상으로 나온다. 이처럼 되살아난 새 생명체인 꽃과 나비는 이 세상에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이며, 우리가 맞이하게 될 부활의 기쁨과 환희, 그리고 아름다움의 전조라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죄와 죽음이라는 어두운 불안 속에 갇혀 움츠러들었던 인간의 삶은 2000년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대지의 흙처럼 포근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잉태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유한했던 우리의 존재가 아름답고 찬란한 ‘새 사람’으로 영원히 꽃피울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이 신비로운 은총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부활’의 기쁨이자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김재동 / 가톨릭 종신부제·수필가이 아침에 약속 부활 부활절 덕분 약속 부활 신구약 성경

2025-04-28

[이 아침에] 용기가 필요해

머리 염색할 날짜를 훨씬 넘겼다. 흰 머리카락은 정수리, 뒤통수, 옆머리와 앞머리를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보였다. 흰머리에 다른 색깔을 입히기 위한 독한 염색약을 바르는 일을 더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알고 보니 별일이었다.     개성이랄 게 별다른 게 있나 생긴 대로 사는 게 개성이지.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았다거나 청결하지 않은 것은 문제겠지만 머리카락이 희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불쾌를 주거나 예의가 어긋나는 일이 내 생활에 있을까. 흰 머리카락을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별문제가 없지. 생각의 닻을 용기의 바다에 내려 보기로 했다.   미용실에 들러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자르기만 할 뿐이어서 새로운 머리카락은 각자의 색깔대로 용기 있게 자라났다. 6개월쯤 지나니 머리 모양이 이상하게 달라졌다. 위에서부터 하얀색으로 변한 머리카락은 위아래 중구난방이다. 바가지를 머리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이 하얀색과 검은색이 반으로 나뉘었다. 염색 안 하실 거예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던진다. 말끝에 매달린 관심들은 흰머리에 대한 일종의 낯섦과 옅은 거부감으로 내게 부딪혀 닿았다. 눈이 파랗고 코가 오뚝한 백인 할머니들은 백발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 흉내를 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 염색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도 어른들의 머리카락을 신경 써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의 얼굴 나이에 비해 머리카락은 인위적으로 검은 머리에 별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은발 머리를 고집하는 것도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나는 얼굴보다 시간을 앞서 달리는 머리카락을 염색 안 할 거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고 나니 생긴 대로 살자던 마음도 휘청거린다. 휘청거리는 마음을 확인하듯 흰 머리카락을 들춰 본다. 옆머리를 보려고 좌우로 눈을 뾰족하게 뜬다. 앞머리에도 가닥가닥 흰 머리카락이 모여 있다. 휘청거리던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다.     몇 년 전 어느 모임에서 한 분이 은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뒤에서 보게 되었다. 머리카락 색깔도 은빛으로 빛났고 머리카락 영양 상태도 좋았고 머리카락 수도 많아 보기 좋았는데 그분이 지나가는 얼굴을 보고 어울리지 않는 머리 모양이라고 했었다. 나이 들수록 예뻐요, 잘 생겼어요. 보다는 어려 보여 요가 기분 좋은 덕담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젊어 혹은 어려 보이길 원한다. 이 사회는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 관대해서일까.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추고 눈가의 주름을 최대한 펴는 시술에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은 허공을 가르지도 못하는 비명이 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늙을 것이고 또 죽을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조금은 완곡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늙어가는 것을 피하지 말고 늙음으로써 새롭게 생긴 외모와 생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모든 일에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나이 듦이라는 단어에 대해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면 그 과정은 나이 듦이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에 의한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늙을수록 더 필요한 용기 같다. 내 흰머리를 받아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고 싫어하는 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양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용기 머리카락 색깔 머리카락 영양 머리카락 수도

2025-04-22

[이 아침에] 한인 교회 분쟁, 해법은 사랑

한인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낯선 환경 속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부딪히기 쉬운 이들에게 교회는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한국과 달리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가 적은 이민 사회에서 사람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많은 이들이 이민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교회를 찾는다. 때로는 이러한 만남이 신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별한 연고가 없는 이민자들은 대개 집에서 가까운,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한인 교회를 찾게 된다. 한번 정착한 교회는 익숙함과 정 때문에 이사를 가더라도 쉽게 옮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한인타운의 유서 깊은 대형 교회를 수십 년째 다니고 있다. 오랜 시간 같은 교회를 다니는 동안, 나는 안타깝게도 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신도 간의 의견 다툼, 신도와 성직자 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일부는 교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분열의 중심에는 대개 교회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인타운의 상당수 대형 교회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교인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교회가 갈라서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며, 그 이면에는 어김없이 금전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이러한 갈등은 신문이나 뉴스에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내부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교회가 분열될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오랜 시간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온 교인들이 서로 등을 지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구역 안에서 교제하고 식사하며 믿음의 공동했다. 이러한 분열의 중심에는 대개 교회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인타운의 상당수 대형 교회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교인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교회가 갈라서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며, 그 이면에는 어김없이 금전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심지어 이러한 갈등이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내부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교회가 분열될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오랜 시간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온 교인들이 서로 등을 지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구역 안에서 교제하고 식사하며 믿음의 공동겪지 않는 교회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함께했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렸던 소중한 이들과 단절되지 않고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는 없을까. 교회가 추구하는 사랑 안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초대 교회였던 고린도 교회 역시 심각한 분쟁을 겪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도록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또한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라는 귀한 가르침을 남겼다.   교회의 분열은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누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갑작스럽게 헤어져야 하는 아픔과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아이들이 슬픔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일 것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교회 내의 다툼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서로 마주 앉아 사랑의 공동체로서 진솔하게 대화하고 화해한다면, 그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정호 / 수필가이 아침에 한인 교회 한인 교회 교회 재정 고린도 교회

2025-04-21

[이 아침에] 상실의 아픔을 함께 넘는 이들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가족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진정한 친구를 얻고, 또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값진 경험이다. 학창 시절, 순수한 열정 속에서 맺어진 인연은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자산이 된다.     오래전,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던 친구가 있었다.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안타깝게도 연락이 끊겼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어 오랜 시간 마음 한 켠에 그리움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팔순을 맞아 출판기념회를 겸한 잔치를 열게 되었는데, 기적처럼 60년 만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뉴욕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친구를 만났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살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다.   미국 이민 생활 중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만난 A권사는 흔치 않은 강인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분이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남편이 뒤늦게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개업한 병원이 번창하던 중 갑작스러운 췌장암으로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큰 충격과 슬픔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A권사에게 주변에서 홈스테이를 권유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유학 온 초중고등학생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고 헌신적으로 섬겨왔다. 팬데믹으로 인해 학생들이 입국하지 못하게 되면서 현재는 소수의 학생들만 돌보고 있다.   그녀는 남가주사랑의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그 교회 안에는 그녀처럼 배우자나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교인들이 많다고 한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한 ‘상실 회복’ 세미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이 세미나에 꾸준히 참석하여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큰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전 그녀의 집에서 제26회 ‘상실 회복’ 세미나를 연다면서 나를 초대했다. 부활절을 앞두고 감동을 주는 시를 부탁해, 나는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2세 자녀들도 참석하여 영어 시를 낭송하는 순서도 마련되었다. 정성껏 준비된 풍성한 음식으로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모두 배우자를 잃거나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임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상처를 더욱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그들은 고백했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 사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식을 부지런히 전해야 한다. 십자가와 천국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한 사명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김수영 / 수필가이 아침에 상실 상실 회복 세미나 프로그램 시간 마음

2025-04-20

[이 아침에] 초특급 시니어

내가 아는 어떤 분은 테크놀로지라면 머리를 흔든다. 카톡도 이메일도 하지 않는다. 멀리서 사는 아들은 아파트로 이사하라고 권유하지만, 그분은 오랫동안 사는 너른 뒷마당이 있는 집을 고집한다. 커다란 집에 혼자 사는 엄마가 불안하여, 아들은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고, 층계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나는 카톡을 못 하면 노후에 쓸쓸하다고 말했지만, 그분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한다. 내가 언제 만나자고 하면, 지인은 날짜를 기억하려고 몇 번 소리 내 중얼거린다. 나는 휴대폰 캘린더에 저장하면 얼마나 편한데 그러냐고 안타깝게 바라보곤 한다.     오늘은 모처럼 시내에서 그분을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한식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요즘 새로 생긴 핫하다는 베이커리를 찾아 들어갔다. 한국 분들 몇 분이 빵집의 아늑한 코너에서 앉아 있었다. 다들 머리는 하얗고 간단한 패딩을 입고 야무지게 여민 가방을 옆구리에 찼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우리가 아는 분들이었다. 15년 전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같이 들었던 분들이다. 그때 알았던 분들이 지금도 여전히 만나며 소녀들처럼 수다를 떨고 있다.     그분들은 오랜만에 만난 우리를 무척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갑자기 일행 중 한 분이 성큼 일어났다. 맛있는 빵이 진열된 카운터로 다가갔다. 고급스럽게 포장된 모찌를 5통 사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었다. 집에 가서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말라고 한다. 모찌를 먹으면서 친구들 생각하며 미소를 지으라고 한다. 서로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세월이 굳혀놓은 정이 찹쌀 모찌처럼 끈적거려서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분들은 여전히 기억이 또랑또랑했다. 버스 스케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 시니어 카드를 소지하고, 한두 블록은 걸어서 친구들을 만나러 나온다. 봄비가 질척거리고 바람이 냉랭한 오늘 같은 날도 서슴없이 외출한다.   나는 돌아오면서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노인이 기억을 잃어가는 이유는 나이 탓도 있지만, 꼭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한다. 휴대폰에 지나친 의존, 그로 인한 산만함, 그리고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한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도 해당한다. 화면을 보다 보면 광고가 뜨고 다른 링크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텍스트를 대충 보고 건너뛰는 경향이 있다. 집중하지 못하므로 산만해지고, 기억이 뇌 속에 입력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베이커리에서 만난 슈퍼 시니어들은 치매도 우울증도 도망갈 것 같은 기세다. 수시로 버스 타고 나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밤 공연도 함께 보러 다닌다. 외출하는 몇 시간 동안, 버스 시간, 장소 찾기, 지하철 노선, 차표 간수 등등을 챙겨야 한다. 그러면서 머릿속 회로는 왕성하게 연결된다.     오늘 같이 나온 지인은 3년 전에 남편이 돌아가셨다. 살아계실 때는 모든 일 처리를 남편이 해 주었다. 혼자 남은 엄마가 걱정스러워 엉엉 울던 아들에게 지인은 말했다. 이 집을 유지 관리 못 하면 팔겠다고 말이다. 아들과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그분은 휴대폰 대신에 자신의 기억에 의존했다. 새벽에 일어나 붓글씨를 쓰고, 낮에는 텃밭에 야채를 가꾸고, 큰 집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다. 가계부 정리도 손으로 하고 좋은 말을 읽거나 들으면 노트에 자주 적는다. 지인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카랑카랑해졌다. 오늘 시내를 같이 걸어보니 몸도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나는 가끔 나의 가까운 미래가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궁금해할 거 없다. 오늘 내가 하는 것이 곧 나의 5년 후, 10년 후 모습이다. 베이커리에서 만난 분들은 15년 전에 하던 것을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내 발로 어디든 다니는 이분들은 당당해 보였다.     편한 것을 택하지 말라. 어려운 길을 택하라. 나는 흰색 모찌를 한입 베어 물면서 중얼거렸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초특급 시니어 초특급 시니어 지하철 시니어 슈퍼 시니어들

2025-04-17

[이 아침에] 내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내 편

나이 들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것도 많다. 존경받지 않고 무시당하다고 서글퍼하지 마라. 존경도 위로도 가을 오후에 스치는 바람이다. 날아가는 방귀 잡고 시비거는 꼴이다. 무너지지 않고 도태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살아서 움직여라.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내 인생 내가 산다.   죽은 뒤에 후회할 일 있으면 지금 바로잡으면 된다. 나쁜 짓 많이 하다 죽으면 바가지로 욕먹을 텐데 변명도 못하고 싸울 수도 없어 속상할 게 뻔하다.     나이 들수록 용감해져야 한다. 주눅 들 필요 없다. ‘운명’이란 단어에 매달려 살았으면 큰 맘먹고 나이테 숫자만큼 힘찬 발길질로 ‘뻥’차서 날려 버려라.   골대 앞에서 내 공을 막을 사람은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 누구를 위해 목숨 걸고 살던 시절은 흘러갔다. 내가 없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뜬구름처럼 흘러갔다 해도 빛바랜 일기장을 펼치면 어제의 추억이 먼지처럼 켜켜이 남아있다. 이제 그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내 편이다. 남편 자식 친구 이웃, 명예와 물욕, 성공과 좌절, 행복과 불행마저도 타인의 방에서 손을 흔든다. 아무도 내 인생을 닦달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지 못한다. 나이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살아남았다.   눈물샘이 마르도록 절망으로 허우적거리던 모습을 인생이란 화폭에 그려 낸다면 비록 훈장은 받지 못해도 몇 개의 동메달은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발목 잡는 실수 범하지 말기를. 사랑이던 미움이던 함께한 순간은 축복이었다. 슬픔도 고통도 사랑의 꽃망울로 피어오른다.   치사하게 살지 않기로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은 싫으면 버린다. 떠난 사랑을 잊어버리듯 해묵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죽도록 사랑했던 시간도 아낌없이 떠나보낸다.   흉내 내지 않고, 고집 부리지 않고, 잘난 체하지말고,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생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사소한 일에 목 매달며 작은 일에 흥분하고 남 일에 참견하는 신경 끄고 소수의 정예 인원만 곁에 두면 사는 게 수월해진다.   자식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켜도 크게 유산 남길 처지도 아니면서 서운해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기로 한다.   인생은 싸워서 이기는 투쟁이 아니라 담담하게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길을 나 홀로 간다. 망설이지 말고 소풍 가듯 김밥 몇 줄 주머니에 넣고 길을 떠난다. 오늘이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도 별이 빛나는 길은 슬프지 않다. 간혹 멍 때리며 시간을 낭비해도 된다. 비어있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위로받는 시간인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은 망설이지 말고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고마운 사람에겐 예쁜 카드를 보낸다. 인사 못하고 떠날 수도 있으니까.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다듬고 정리하면 마음이 풍요롭고 살아갈 공간이 넓어진다. 부족한 것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넘치는 것들은 주워 담기 힘들다.     보잘것없는 것들이 소중한 무엇이 되면 멍에를 벗고 하늘 높이 나를 수 있다.   이제 늙을 일만 남았다 생각하면 늙다가 죽는다. 살아있는 소중한 시간을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면 자유가 인생을 충만케 하리라.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시간 나이테 숫자 남편 자식 좌절 행복

2025-04-16

[이 아침에] 따뜻한 이웃을 그리며

일을 나가려 차를 후진하며 좌우를 살핀다. 어깨 너머로 제인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 차에서 내렸다.   제인, 오랜만입니다, 인사를 했다. 그녀가 트레이드마크인 검정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환하게 웃는다. 걷기를 끝내고 오는 길인 성싶어 얼마나 걸었느냐고 물었다. 요즘엔 공원까지 다니기가 힘들어 1마일 거리에 있는 마켓 쪽으로 갔다 오는 길이란다. 무탈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한 집 건너에 사는 이웃이다. 7년 전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다. 오다가다 가끔 마주하는 그녀는 언제나 밝고 씩씩하다. 몇 살인지 궁금해 물은 적이 있다. 대답 대신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몇 살인지 더 궁금해졌다.   어느 날 집 앞에서 마주친 제인은 담소 중 뉴저지가 고향이고 열아홉 살 때 남편을 만나 LA로 왔다고 했다. 나는 그때가 몇 년도였는가를 물었더니 주저하지 않는 그녀의 답으로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올해 90세가 된다. 믿지 못할 만큼 꼿꼿하고 정신이 맑다. 그녀는 내가 나이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할 테다.   언젠가 막 집에 돌아와 차에서 내리는 내게 제인이 다가와 도와달라 했다. 피부과 의사가 등 뒤에 붙여준 밴디지를 바꿔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아 못하고 있단다. 그녀의 집으로 갔다. 남편과 함께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넓은 집안에 가득했다. 가족역사가 사진으로 걸려있었다. 제인의 젊은 리즈 시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에 목선까지 내려오는 진한 갈색 머리의 미녀. 미소가 봄 햇살처럼 싱그러웠다.   제인이 사진 속 가족을 소개했다. 그녀는 딸과 손녀를 가리켰다. 암으로 고생하는 딸과 유방에서 시작한 암세포가 온 뼛속으로 번져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손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살 만큼 살아온 자신이 대신 아파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 소식에 외로움이 짙어간다고도 했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가질 것 다 가져 복이 많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넉넉한 물질이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주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머지않아 마주할 나의 시간일 수도 있다.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 기반과 사회적 관계망은 약해지고 홀로라는 생각이 날 때면 어찌 쓸쓸하지 않겠는가.   아침에 일어나니 마음이 무거워 걷기를 내일로 미룰까 하다 걸었다고 제인이 말한다.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 나가고 싶지 않은 때 같이 걷자며 내 전화번호를 그녀 전화기에 입력했다. 남편 전화번호도 저장해주며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했다.   이웃에 관심을 갖는 일이 사생활 침해로 오해받을까 싶어 지금껏 그들을 소 닭 보듯 지나쳤다. 이 아침에 다짐한다. 내가 먼저 변해야겠다고. 데면데면한 ‘옆집’이 아닌 언제라도 문이 열려있어 소통 가능한 따뜻한 ‘이웃’이 되어야겠다고. 이정숙 / 수필가이 아침에 이웃 남편 전화번호 피부과 의사 검정 카우보이모자

2025-04-14

[이 아침에] 불면의 밤, 파면 그 후

지난 몇 달 동안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이젠 끝나나 보다 기대했는데 무산이 되어버렸다.   미국국적의 내가 한국정치에 무에 그리 관심이 있었으랴만, 조국의 일이며 형제 친지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성질은 급한데 헌재의 결정은 부지하세월이라 불안하여 한동안 일손을 놓았다. 글이 써지질 않아 잡지사 기고문도 신문 칼럼도 순서가 뒤처졌다.   독서도 멀리하고 드라마와 영화에도 눈이 안 갔다. 현실이 더 극적이고 피를 말리는데 이런 스토리를 어디에서 체험한 단말인가?     유튜브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으면서 열불 나는 시간을 보냈다. 오래된 선배님들과의 친목모임에 가서는 한국정치이야기를 하다 서로 얼굴을 붉혔다. 식당에서 나와 주차장에서 연장전을 하시는 선배님들을 뒤로하고 빠져나왔는데 집에 온 뒤로 카톡으로 서로 사과하느라 반나절이 갔다. 밥 먹고 토론하느라 반나절 집에 돌아와 반나절이니 하루 꼬박 머리가 아팠다.   그 일 이후론 친목 모임에 나가 시작 전에 미리 이야기했다. 제발 오늘 이 시간만큼은 정치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초조하게 디데이를 기다리고 내심 기대도 했건만 내 생각과는 먼 뜻밖의 결과에 가슴이 무너졌다. 분하고 속상한 건 어느 한쪽의 일이 아니니 온 나라의 절반은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한 가지 이번에 배웠다면 남에게 너무 상처받지도 말고, 남으로부터 너무 기대하지도 말 것.   파면이 되고 난 후의 시국이 걱정되어 또 한밤의 불면의 밤을 보냈다. 실향민 부모 슬하에서 자란 우리 형제들은, 공산당이니 빨갱이니, 좌파라는 단어에 우선 경기를 일으킨다. 이북출신으로 신원특이자였던 아버지가 받은 차별(연좌제)을 일찍이 경험한 터였다. 남동생 셋은 대학 때 ROTC를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신문사에 재직 시 선배였던 선우 휘 선생의 추천서를 붙였어도 효과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 또 하시며 우리에게 미안해 하셨다. 아버지가 실향민인 것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니건만 그땐 그랬다. 그 뒤론 더 공산당에 반감을 갖고 좌파의 모임이나 데모에는 참여 않고 몸조심을 하는 집안의 내력이 있다.   대한민국의 연좌제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기본권과도 충돌을 빚게 되는 문제점이 인식되어 1980년 헌법은 제12조 3항에서 연좌제 폐지를 헌법적 요청으로 규정하였고, 1981년 3월 25일부터 폐지되었으나 동생들에겐 너무 늦은 일이었다.   대한민국이 ‘적화’되면 어쩔까 싶어서 탄핵 파면 후에는 더 불안했다. 이건 윤가인지 이가인지 인물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40년 전에 떠나온 내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서이다.   대한민국에 주님의 가호가 떠나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요즈음이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불면 파면 동안 불면 연좌제 폐지 헌법적 요청

2025-04-07

[이 아침에]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전성기

쓸데없다 싶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당신의 인생 중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그런 질문을 왜 하느냐고 핀잔하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자신의 삶과 생각을 술술 풀어 놓는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 하듯 인생도 그렇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게 때로 필요할 성싶다.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20대라고 하는 분이 많았다. 뭐든 이룰 것 같은 희망이 있어 좋았으리라.   20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미래를 단단히 준비하고 싶다. 막연히 잘될 거라 믿으며 나태하게 사는 나를 꾸짖고 공부하겠다. 행정학 전공자로서 공무원 시험 준비도 하고 한 발 한 발 커리어를 쌓을 것이다. 내 두 발로 서서 정서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리라. 아쉬움마저 그리움으로 남으니 나름 괜찮은 청춘을 통과했다고 스스로 토닥여 준다.   아이들 키울 때는 하루하루 바빴으며 죽순처럼 커가는 애들 모습에 웃음이 만발하던 시기였다. 아이들 학교 간 시간에 일을 하고 하교 시간에 맞춰 달려가 픽업했다. 운전하며 라디오를 듣곤 했는데 방송에서 나온 말이 가슴에 남았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를 생각해 보라 했다. 여성의 경우는 32세에서 35세며 남성은 35세에서 38세 정도라 했는데, 그 근거를 뭐라 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가정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미래를 설계할 젊음이 있어 좋다고 하지 않았을까.   일용할 양식을 위해 땀 흘리며 아이들이 성인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기까지 쉽지 않았다. 그 길에 꽃밭만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눈물을 수없이 받아내며 40, 50대를 통과했다.   백세 시대를 맞아 105세 된 김형석 교수에게 시선이 간다. 그의 저서 ‘백 년을 살아보니’는 베스트셀러 코너에 한창 머물렀다. ‘백세 철학자의 행복론’ 등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는 백세를 살아보니 60대, 65세가 가장 행복했고 빛났다고 토로한다. 글을 잘 썼고 생각하는 힘도 고매했다고 고백한다. 어느덧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가장 행복하다는 나이라는데 공감한다.   최근 일이다. ESL 수업을 같이 받는 70대 언니들에게 물었다. 전성기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은퇴하고 공부하는 지금이 좋다며 함박웃음을 건넸다. 건강이 허락하여 다양한 취미 활동과 함께 오롯이 당신 삶에 집중하는 지금이 좋단다.   과실나무는 열매 맺을 때가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인생 열매 맺는 노년기가 가장 가치 있는 때라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환갑을 치르고 난 후, 나는 노년기를 준비하는 한 살배기라고 주위에 말하곤 한다. 마주하는 좋은 때, 노년기를 잘 가꾸려 한다. 나답게 살아갈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사용하려 한다. 실패와 시행착오마저 끌어안으며 전성기로 펼치려 한다. 70세를 넘기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를 영상으로 만났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멋지게 연주하는 90세를 훌쩍 넘긴 그분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인생은 늘 ‘ing’,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전성기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김현실 / 수필가이 아침에 전성기 백세 철학자 하교 시간 베스트셀러 코너

2025-04-06

[이 아침에]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는다

지난 주일,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했다. 50대에 신자가 된 후, 매년 한두 차례 하는 일이다. 고해성사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지난 삶과 언행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잘못한 일들을 깨닫고(성찰), 뉘우치며(통회),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고(결심), 신부님에게 나의 죄를 고백하고(고백), 죄 사함을 받은 다음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보속) 받는 것이다. 고해성사를 보고 하느님에게서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었으면 적절한 보상과 용서를 구해야 한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그 후에는 다소 회의적인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보곤 했는데, 최근에는 기쁜 마음으로 고해소에 들어간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신부님에게 낱낱이 고백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진심으로 죄를 깨달아 죄지은 이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죄사함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과연 무엇이 죄인가. 이건 사람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 도울 수 있는데 돕지 않은 것, 남들 앞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생각이나 행동 등이 모두 죄가 아닌가 싶다.   자녀가 여럿이다 보니 모두 늘 좋을 수만은 없다. 가끔은 섭섭한 일도 생기고, 그래서 한동안 소원해지기도 한다. 요즘은 이런 일이 생기면, 그저 “내 탓이요”하고 만다. 사실이 그렇다. 내가 부모 된 도리를 잘했어야 하는데, 뭔가 심기를 건드리는 언행을 했으니 자녀가 내게 섭섭함을 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웃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이러쿵저러쿵하면 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묵은 죄를 생각하다 보면 용서를 구해야 하는 당사자를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친절과 관용을 베푸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나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죄를 짓고 산다. 그러니 내게 상처를 입히고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다. 변상과 사과를 받고 싶지만 상대방은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태도를 보인다면?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의 죄를 용서해야, 나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남을 용서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일이다. 용서하지 않은 일은 늘 마음에 남아 나를 괴롭힌다. 그 일을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용서하고 잊는 것이 최선이다.   얼마 전 차고 공사를 하며 아내가 이런저런 물건을 많이 정리했다. 차고가 넓어졌다. 내게 고해성사는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으며 마음에 남아 있는 앙금을 털어낸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용서 한동안 소원하어지기 변상과 사과 차고 공사

2025-04-02

[이 아침에] 리사에게, 다시 행복하기로 약속할게

돌아오기 위해 길을 떠난다. 돌아올 마음이 없다면 애초에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는 것이 힘들 때, 고독의 그림자가 발목을 잡을 때. 주름진 생의 고비마다 떠나고 싶었다. 피하고 싶었다. 허무와 방랑의 끝자락에서 그래도 돌아가야 할, 지켜내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행복인가.   리사가 마지막 내게 남긴 편지 접어 가방에 넣고 여행길에 오른다. 리사는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믿기 어렵지만 리사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은 태양이 지고 뜨는 것처럼 확실하게 아프다.     리사는 장애아로 태어났지만 순수하고 착한 천사였다. 퍼즐과 레고 게임 천재고 유머가 가득한 멘트로 가족들과 이웃들의 사랑을 받았다. 리사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탈없이 건강하던 리사가 응급실에 실려가기 5일 전에 쓴 편지다.     ‘엄마는 행복할 자격이 있어요. 엄마는 매우 특별한 사람입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모두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마워요. 리사가(Mom you deserve to be happy. You are a very special person. Be happy all the time. Everybody loves you. You deserve happiness always. Thank you, Lisa.).’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가 너무 기특해서 냉장고 문에 붙여 놓았더니 리사는 햇살처럼 밝은 미소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것이 리사가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가 됐다. 나를 두고 홀로 떠나는 자신의 죽음을 리사는 감지하고 있었을까.     인생의 길은 수만 갈래다.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어 가야할 길이 어딘지 알지 못한다. 꿈꾸고 염원하는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길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는지 모른다.   어릴 적 연날리기 할 때 연실을 한없이 풀어내야 하는데 기술 부족으로 내 연은 잘 끊어 먹히거나 땅바닥에 내 동대기 치기 예사였다. 그래도 찔레꽃 넝쿨 앞에 앉아 어질어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취해 졸음을 참던 순간은 따스하고 행복했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살면 살아진다. 청춘은 늙지 않는다. 길 위에서 길을 찾는 바보짓이라도 하늘 끝까지 치솟는 연 따라 창공을 나르고 아지랑이 품에 안고 사랑하는 날들은 감미로웠다.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에 집착했지만 다섯 번째 천하 순행 때 길 위에서 49세로 죽는다. 절인 생선을 마차에 실어 그의 죽음을 은폐했는데 시황제의 최후는 냄새 나는 생선과 함께 썩어갔다.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얻으려고 살아왔던가.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인간에 대한 연민, 삶에 대한 열정과 노력, 나는 그냥 살아왔을 뿐이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리사의 마지막날들을 사랑으로 지켜준 딸과 아들에게 감사 이메일을 보낸다. 리사를 보내고 힘들었던 시간을 내려놓고 리사가 남긴 편지의 약속처럼 살기로 한다.     ‘저는 이번 생애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뒤로하고 새롭게 시작할 거에요(I am going to leave the pain and suffering behind on this trip and start anew).’   길 위에서 다시 행복하기로 했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행복 약속 마지막 편지 everybody loves special person

2025-03-25

[이 아침에] 퇴고의 길

가까이 지내는 선배가 글 두 편을 내밀었다. 하나는 본인이 쓴 신앙 간증문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지 편집을 맡은 전도사가 그의 글을 퇴고한 것이다. 선배는 나이 든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쓴 간증문을 젊은 전도사가 이렇듯 몽땅 고쳐도 되느냐고 사뭇 분개했다.     평소에 지나치게 새치름한 그 교회 여전도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 터였다. “그렇다면 그거야 그 사람 글이지 본인 글이 아니지요”라고 대충 대꾸해 가며 원문과 수정문을 훑어보다 슬그머니 맞장구 전선을 뒤로 물렸다. 선배의 글보다 전도사의 수정문이 훨씬 돋보였기 때문이다.   원문엔 BC(Before Christ)와 AC(After Christ), 즉 믿음을 갖기 이전의 세속적인 삶과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의 변화된 삶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절절한 사연들에도 불구하고 절제 없는 내용 전개와 중복된 소재 인용으로 글의 주제가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뜨거운 신앙 체험은 본인 자신만의 것일 뿐 직접 경험하지 못한 독자에게는 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전도사의 글은 이런 부분들이 절도 있는 표현으로 바뀌어 있었고 문장과 맞춤법도 잘 다듬어져 있었다.   퇴고라는 것을 원고를 마무리하는 간단한 손질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 뜻이 당나라 시인 가도와 대문호 한유의 고사에서 비롯된 유서 깊은 말인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가도는 자신의 오언시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연에서 중이 문을 밀고 들어간다는 퇴(推)로 쓸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다는 고(敲)로 쓸지 망설였다. 그러던 중에 평소에 존경하던 한유를 만났고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다’(僧敲月下門)로 마무리했다. 여기서 유래되어 ‘퇴’ 자와 ‘고’ 자는 문장을 다듬는다는 뜻이 전혀 없는데도 그런 뜻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부활〉을 쓰며 수십 번을 다듬었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400번 이상 고쳐 썼다고 한다. 퇴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낯선 문을 두드려(고) 탁발을 계속할지, 절 집 문을 슬그머니 밀고(퇴) 들어가 발 씻고 잠자리에 들어 버릴지, 그날 밤 가도의 고뇌가 내 것이 된 지 오래다.   수필을 한 편 쓰면 그때부터 긴 퇴고의 여정이 시작된다. 처음 몇 번은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보충, 첨가, 가필한다. 다음으로 문장을 압축하고 간결한 표현을 고른다. ‘-적’, ‘-의’, ‘-것’ 등의 문구를 삭제한다. 번역 작품을 많이 읽은 탓에 자주 실수하게 되는 수동형의 표현을 찾아내 능동형으로 바꾼다. 말하려던 주제나 흐름이 흐트러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분신 같이 여겼던 한 문단 전체도 과감히 버린다. 그 문장에 더 알맞다고 여겨지는 어휘가 떠오르면 어떤 음악가처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글을 고친다.     글 한 편은 하루에 쓰고 퇴고는 한 달가량 계속해도 뭔가 미진하다. 퇴고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은 식탁 위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종일 풀가동에 지치고 내 빈한한 사유의 실꾸리는 계속되는 혹사에 비명을 지른다.   퇴고에는 뚜렷한 왕도가 없음을 글을 쓸수록 절실히 깨닫는다. 끝없는 퇴고의 길을 들메끈을 고쳐 매며 걷는다. 그 길 위에서 나의 삶도 다듬어지고 조금 더 온전해지지 않을까 꿈꾼다. 유니스 박 / 수필가이 아침에 퇴고 교회 여전도사가 신앙 간증문 신앙 체험

2025-03-20

[이 아침에] 민주주의는 가까운 곳부터

고등학교 동기가 동문 산악반 카톡을 만들었다. 예전에 산악반에서 활동했던 동문들이 세월이 많이 흘러 서로 연락을 하지 못했거나 만나지 못해왔다. 그래서 서로 다시금 소식도 전하고 안부도 묻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산악반 동문들을 연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톡방을 열었다.     취지가 좋았고 오래전 선후배들을 서로 연락할 수 있다는 것에 반가웠다. 미국에 사는 산악반 선배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았는데 다시 연락처를 알아서 만날 수 있었다. 예전에 찍은 사진들도 올라왔다.     내겐 없는 오래전 사진으로 정말 귀한 사진이었다. 옛 추억을 생생하게 생각나게 하는 사진이었다. 고등학교 학생 때 모습이 앳되고 순수하고 발랄하게 보였다. 그때 우리는 자일을 몸에 걸치고 인수봉에 오르곤 하였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암벽등반을 젊은 혈기로 해냈다.     세상을 먼저 떠난 동문도 있다. 체구는 작지만 수직으로 된 암벽을 잘 타는 1년 선배가 있었다. 그는 캐나다에 있는 호수에서 사고로 물에 빠져 유명을 달리했다. 또 활발하게 산악 활동을 했던 나보다 몇 년 위 선배는 루게릭병에 걸렸다. 서서히 악화되어 고통속에 생을 마쳤다.     오랫동안 서로 만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함께할 자리를 마련하자는 말이 나왔다. 개별적으로는 만나도 산악반 동문 전체가 만나지는 않았다. 해외에 사는 동문은 한국에 갈 기회를 만들어서 함께 모이자고 했다. 이제 나이 들어 모습은 변하였지만 옛 추억을 생각하며 만난다면 반갑고 뜻있는 만남이 되리라고 생각됐다.   그리운 인연들과 다시 연결해준 단톡방은 여러모로 유익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부터 불편해졌다. 한국에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발생했다. 누군가 산악반 동문 카톡방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올렸다. 그리고 또 다른 동문이 지난 1월 발생한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산불에 빗대어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덧붙였다.   단톡방에 주도적으로 문자를 많이 올리는 동문이 있다. 그런데 그 동문이 이 방은 무서워서 참여 못하겠다고 하면서 나가버렸다. 좋은 취지로 만든 카톡방 모임이 이렇게 되니 아쉬웠다.       단톡방이 원만하고 민주적인 질서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는 없을까. 가장 삼가야 할 것이 비방과 언어폭력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다른 관점으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얼마든지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결점도 있고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제도중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다수에 의해 결정됐다면 그것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기회에 자기의 생각과 사상이 실행되기를 엿보아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작은 모임에서부터 민주적 원리를 시작하면 어떨까.   이 세계와 사회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절충에 의해 흘러가게 마련이다. 보수냐 진보냐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유대 관계일 것이다. 그것은 감히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까운 카톡 모임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간다면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정호 / 수필가이 아침에 민주주의 산악반 동문들 동문 산악반 산악반 선배

2025-03-19

[이 아침에] ‘수리할 의무’

얼마 전,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이 차 안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더니, 차 문을 여는 순간 손잡이가 부러져 한동안 차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20년을 넘긴 차니 이곳저곳에서 고장이 날 만도 했다. 정비소에 맡기면 꽤 비싼 수리비가 들 터였다. 그렇다고 손잡이 하나 부러졌다고 차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문득 ‘유 선생님’이 떠올랐다. ‘유 선생님’은 ‘유튜브(YouTube)’와 ‘선생님’이 합쳐진 말로, 선생님으로부터 배움을 얻듯, 유튜브 영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 선생님’은 아들이 타는 차와 똑같은 모델의 문 손잡이 교체 방법을 상세히 알려 주셨다.   자동차 부품을 구입해 유튜브에서 하라는 대로 했더니 손쉽게 자동차 손잡이를 교체할 수 있었다. 자동차 손잡이를 고치고 나서 얻은 자신감에 기대어 내친김에 좀 더 까다로운 수리에 도전하기로 했다. 부엌에 있는 냉장고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문이 한쪽으로 주저앉은 지 오래였다. 새 냉장고를 사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바꾸기 전에 버리는 셈 치고 한 번 고쳐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유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먼저 부품을 주문했다. 안전을 위해 전기 코드를 뽑은 뒤 조심스럽게 볼트를 풀어 냉장고 문을 떼어냈다. 냉장고 아래쪽에 있는 낡은 힌지를 제거하고 새것을 장착한 후, 냉장고 문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윗부분을 고정하고 뚜껑을 씌우니 한쪽으로 주저앉았던 냉장고 문이 반듯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20달러짜리 부품으로 자동차 문을 고쳤고, 같은 값으로 냉장고도 고치니 뿌듯했다. 무엇보다 멀쩡한 것을 버리지 않고 더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만약 전문가를 불렀다면 많은 수리비가 들었을 것이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는 웬만한 가전제품은 고쳐 쓰기보다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하면서 소비를 장려한다.     물론, 최신 제품은 신기술이 적용되어 품질이 우수하고, 에너지 효율성 면에서도 뛰어나겠지만, 그로 인한 환경 파괴와 쓰레기 배출, 가전제품 수리업의 쇠퇴 등 사회적 영향도 두루 고려해야 한다.     환경보호에 무던히 신경을 쓰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가전제품 제조업체가 합리적 가격으로 부품과 수리 도구를 일정 기간 이상 공급하고, 수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수리 시설을 유지하도록 하는 법을 마련했다. 이를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라고 부른다.     가전제품에는 ‘수리할 권리’와 더불어 수리를 포기할 자유가 있지만, 사람에게는 ‘수리할 권리’ 대신 ‘수리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몸이 아프면 치료받고, 마음이 힘들면 누군가에게 속풀이라도 하고, 때로는 조용히 상처를 돌보아야 한다. 아무리 금이 가고 망가져도 사람은 반드시 수리되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고장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망가질 때마다 잘 고쳐가며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리받고 회복되어 다시 일어서야 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자. 그렇게 다시 일어선 삶은 이전보다 더 단단한 인생이 될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수리 의무 수리 시설 수리 도구 자동차 손잡이

2025-03-12

[이 아침에] 눈먼 사랑을 구경한 죄

간신히 얻어가진 밸런타인 장미꽃은 일주일이 넘어가자 시들었다. 거꾸로 매달아 말려볼까 하다가 말린 꽃으로 사랑을 증명하는 듯한 궁색한 짓은, 내 나이엔 하는 게 아니다 싶어 초록색 쓰레기 통에 과감히 던졌다. 안개꽃과 유칼립투스는 아직 쓸만하건만.   신혼부부도 아니고 45년 동안이나 살면서 무슨 사랑 운운할 게 남아있을까? ‘동지애’ 정도겠지.   50대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이를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중계했다. 사랑과 연기와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지 않은가?     본인 말로는 사랑이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부적절한 관계였다. 눈먼 사랑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 같았다. 이목이나 평판이 두렵지 않은지, 오히려 그 사랑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가십거리의 가장 좋은 소재인 남녀상열지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특히 우물가의 중년여인들에겐 더 할 수 없는 수다의 소재였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감춰진 욕망을 자극하기도 하며, 구경꾼인 나는 적어도 도덕적 평가에서 자유롭다는 안도감에 대리만족의 스릴을 즐기는 것이다. 우린 불륜드라마의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열심히 구경을 한 비극의 관람자들이었다.   그녀는 때때로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들러 그녀의 남편에게 우리 회사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며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보다 못한 내 남편이 “만약 그녀가 우리 사무실의 문턱을 다시 넘으면 당신과 이혼할 것!”이라며 내게 경고했다. 가정에 불성실한 그녀와 내가 친구인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즈음 그녀의 사랑도 오래가지 못하고 깨졌다. 그녀의 행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많이 알고 있던 나는 그녀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내 험담을 하기 시작했고 옆에서 열심히 들어주던 나는 나쁜 여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사고는 자기가 치고 욕은 구경꾼이 먹는 상황이 되었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간혹 글 쓰는 이들 중에 사랑을 경험해 봐야 실감나게 쓸 수 있다며 부도덕을 합리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살인에 대해 쓰려면 살인을 직접 해 봐야 하는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글 소재가 없기로서니 부정과 불륜을 실천해 가면서 까지 글을 써야만 하는지. 그건 문학에 대한 모독이며 독자를 배반하는 일이기도 하다.   케케묵은 불륜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옳지 않은 이야기는 듣지도 말 것이며 악한 행실과는 멀리 떠나 있어야 안전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현대인의 문제는 더 이상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죄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할 바에는, 옆에서 열심히 듣기만 해도 악행에 동조하는 것임을 늘 명심하며 살아야겠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사랑 구경 밸런타인 장미꽃 초록색 쓰레기 우리 사무실

2025-03-10

[이 아침에] 우체국 해방일지

우체국에 들렀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직원들을 보면서 30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갓 이민와 직장을 찾던 참이었다. 창구에서 유니폼을 입고 친절한 미소를 짓는 미국 아저씨를 보면서 저런 일이라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체국 직원 모집 공고가 났다. 분류직에 지원했다. 배달원들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배달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라 했다. 경력이 쌓이면 창구 직원으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시험을 치르고 합격했지만 발령을 기다려야만 했다.   미국은 카드 문화의 나라다. 떨어져 사는 많은 사람이 카드를 통해 인사를 나누며 살아간다 거기다 미국 땅은 또 얼마나 넓은가. 그 문화는 일찍이 어마어마한 량의 우편물을 만들어 냈다. 우체국에 편지와 카드만큼 많았던 것이 청구서와 지불수표(payment check)였다. 지불 마감 시간 때문에 우체국 직원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미치다’라는 영어가 ‘going crazy’가 아니라 ‘going postal’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내가 합격할 즈음 바코드를 읽을 수 있는 기계가 개발되었다. 그로 인해 우체국은 엄청난 숫자의 직원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도 안 돼 그 획기적인 기계도 퇴물 위기에 놓이게 된다. ‘Paperless’, 종이가 사라지는 시대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컬버시티의 게이트웨이 우체국에 발령이 났다. 합격한 지 2년이 지난 후였다. 미국 공무원이 된 것이다. 철밥통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미국에서 내게 무슨 일이 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든든했다.   우편물이 주소지로 나가는 오전 10시에 맞추어 새벽 3시30분부터 분류가 시작되었다. 창구 뒤는 커다란 기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과 같았다. 기계에서 누락되는 우편물은 사람이 분류했다.   나는 기계 작동하는 곳에 배치되었다. 기계는 미국 사람 표준 키에 못 미치는 동양인에게는 꽤 높았다. 기계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상자에는 우편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무거운 종이 다발 상자를 어깨 위까지 들어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는 기계 위에 얹어야 했다. 하루에 50번, 70번, 100번을 얹었다.   창구에서 본 미소는 거짓이었다. 막노동, 그 자체였다. 4년이 지나도 종이의 무게는 돌처럼 무겁기만 했다. 매일 어깨가 빠질 것 같았고 뻣뻣해진 목은 잘 돌아가지도 않았다. 집안일은 물론 애들 키우기도 힘들었다. 창구까지 가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았다. 퇴근길 차에서 혼자 울 때도 많았다. 시험 준비기간까지 합해 5년이 넘는 세월을 ‘우체국’에서 보낸 셈이었다.   나의 수고, 나의 열정이 허무와 공허로 밀려왔다. 남은 인생을 꼭 여기서 이렇게 견디어야 하나. 다른 길은 없는가. 그렇다. 이곳은 미국이다. 기회의 나라가 아닌가. 내게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5년이면 충분하다. 나는 미련 없이 백기를 들었다. “여기서는 항복!”   그렇게 미국 생활 1막을 마무리했다. 다시, 뚜벅뚜벅 2막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마야 정 / 수필가이 아침에 우체국 해방 우체국 직원 게이트웨이 우체국 창구 직원

2025-03-09

[이 아침에] 돌배나무

돌배나무에 꽃이 피었다. 돌배나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5~16년 전의 일이다. 지붕공사를 하며 지붕과 처마에 가지를 드리우는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렸다. 막상 나무들을 제거하고 나니 빈공간이 허전하고 그늘도 사라져 나무를 한그루 심기로 했다. 나무를 사려고 하니 생각보다 비쌌다. 어린 나무를 심어 몇 년 키우면 되지 싶어 홈디포에서 세일하는 나무를 사 왔다. 교우 S씨 부부의 도움을 받아 심고, 식수 기념으로 버팀목에 사인까지 했다.     제법 큰 키의 나무를 싸게 판 이유가 있었다. 키는 사람만 한데 줄기는 가늘어 바람이 불면 심하게 휘청거리는 것이었다. 몇 해가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후, 앞마당 공사를 하며 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 콘크리트를 깔게 되었다. 나무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놈 뽑아버릴까 했는데, 그것도 생물이라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네가 장미를 위해 소비한 시간이 너의 장미를 소중하게 만드는 거야.” (어린 왕자에 나오는 글이다.)     그동안 들인 공만큼 정도 들었다. 가드너에게 (나무 가격의 두 배가 넘는) 50달러를 주고 잔디밭 위로 옮겨 심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외출에서 돌아오니 누군가 주변에 심을 박아 나무를 묶어 놓았다. 알고 보니 건너편 이웃이 바람에 쓰러진 나무를 세워놓은 것이다. 자세히 보니 줄기가 부러졌다. 아내가 테이프를 붙여 살려보려 했지만 결국 나무의 4/3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어찌 되나 두고 보자 하며 지냈는데, 부러진 줄기에서 가지가 새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가 나오고, 반대쪽에 두 개가 나오고, 그렇게 모양을 갖추어 갔다. 돌배나무가 보낸 힘든 세월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부러진 흉터가 보이지만, 남들에게는 의젓한 나무의 모습이다.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하얀 꽃을 피우며 봄이 멀지 않음을 알려 준다. 몇 년 더 지나고 나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것이다.   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한번 맺은 인연을 줄기차게 잡고 간다.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이 좋기 때문이다. 만남은 인연의 시작일 뿐, 그 다음에는 관계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심적·물적 희생과 투자가 따른다. 때로는 곁에서 지켜보며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사람들 사이뿐 아니라 사물과도 인연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집이 그렇고, 차가 그렇고, 옷도 모두 시절인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끼는 물건 중에는 십수 년 전에 선물 받은 휠체어 장갑이다. 비슷한 장갑을 여러 개 샀지만, 이것만큼 편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아끼며 사용해 지금도 쓰고 있다.   나이가 들며 아쉽고, 슬프고, 애처로운 것은 이런 인연들과 헤어지게 되는 일이다. ‘회자정리’며, ‘거자필반’이라 했지만, 나이 든 사람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돌배나무 나무 구실 나무 가격 모두 시절인연

2025-02-16

[이 아침에] 고마워 아들, 엄마 참 행복해

회사 프런트 오피스에 꽃 배달이 연이어 온다. 밸런타인스 데이다. 꽃 선물을 받아 든 젊은 여사원들의 환한 미소가 어여쁘다. 내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밸런타인 꽃 선물을 저들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그림 속 주제는 스스로 모르기 마련이지만,바라보는 이의 눈엔 행복이 봄 햇살처럼 눈부시게 비친다.     오후 일찍 퇴근한 막내가 찾아와 나를 밸런타인 이벤트로 이끈다. 분위기 있는 식당을 예약해 격조 있는 음식을 즐기고, 이어서 영화관으로 안내되었다.     나랑 극장에 가면 막내는 으레 칵테일바로 먼저 데려가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시켜준다.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시며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다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이다.     엄마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아들은 잘 모른다. 언젠가 자연스레 체득하게 될 때가 있으리라. 우리 어머니 노년의 행복이 딸과 함께하는 시간이었음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기신 글을 읽고서야 알았던 것처럼.     자식들은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고 무심히 여기지만, 엄마야말로 얼마나 많은 말을 마음속으로 접어 두는지. 엄마의 말은 빙산의 일각처럼 조금 드러낼 뿐, 수면 밑에 잠긴 거대한 밑동이 되어 잠잠히 받친다.     막내와 마주할 때면 주로 내가 이야기한다. 아들은 간간이 미소나 짧은 응답을 할 뿐 귀 기울여 듣는다. 이야기 도중 서울 오빠에게서 메일이 왔다. 읽다가 눈물을 글썽이니 놀란 아들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외삼촌의 안부 글인데 괜히 눈물이 난다며, 읽어 줄까 물었다. 슬퍼서 울게 되는 건 싫다며 고개를 젓는다. 막내의 여린 면모와 마주쳐 엄마의 둔감이 저며 들고 애틋함이 훑는다.   아들이 화제를 재미있게 돌린다. “엄마, 나한테 애인이 있으면 엄만 지금 ‘나 홀로 집에’겠지?” 나는 웃음으로 맞장구친다. 밸런타인을 멋지게 보내게 해주어 고맙다고,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마음속에선 아들이 애인과 밸런타인데이를 보낸다면 더 기쁘리라고 되뇌면서.   영화 상영 대기 시간의 바에서는 아들과 함께하는 정겨운 분위기를 그대로 재워 두고픈 마음이 담겨 와인을 아주 천천히 기울여 음미한다. 다 비우지 못한 잔 위로 아껴 둔 정겨움을 부어 담은 듯, 반쯤 남은 잔을 소중히 들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La La Land’. 엄마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애써 찾은 듯하다. 감상적인 영화를 보며 혹시 아들이 지루해 하지는 않을까 살짝 훔쳐본다. 아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좀처럼 눈물짓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우리 막내. 정작 마음이 참 여리구나. 아들이 일어서며 말했다. “영화 참 잘만들었지? 전혀 슬픈 영화가 아닌 것 같은데 굉장히 슬프네. 집에 돌아가면 게임 한 판을 해서 슬픈 기운 날려 버려야겠다. 하하.”     주차장에 이르러 아들 부축을 마다하며 방금 영화에서 받은 감흥이 뒤섞여 허밍을 부르고 빙빙 춤을 춘다. 이런 엄마의 제멋 대로를 말리고 싶어하는 눈치라도 보일까 하여 취기에도 언뜻 아들을 살핀다. 내가 넘어질까 봐 주춤거리며 지켜보는 아들 눈길에서 남편의 따뜻한 눈빛이 아른거린다.     엄마의 춤이 저절로 우러나는 행복의 몸짓임을 아는 웃음 같다. 그 웃음에서, 엄마들 못지않게 자식들도 마음의 수면 밑으로 침묵의 말들을 잠가 두고 있음을 읽는다. 우리 모자의 밸런타인 맞이가 오늘 하루 함께한 시간 속에 아름답게 새겨져 갔다.     “고맙다.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 참 행복하네.” 이영신 / 수필가이 아침에 아들 엄마 아들 엄마 아들 부축 아들 눈길

2025-02-12

[이 아침에] 명랑한 버팀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풍랑의 연속이다. 사업이 흔들리고, 가족이 아프고, 믿었던 관계가 무너지고, 상상도 못 했던 사고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절망에 몸을 맡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묵묵히 버티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로 집을 잃은 교우를 만났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절망이 드리운 그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쌓은 소중한 추억도, 알뜰살뜰 마련했던 살림살이도, 당장 입을 옷가지마저 잿더미가 되었는데도 그의 입에서는 탄식 대신 긍정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상실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면서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전쟁도 겪었고, 이민 와서는 4·29 LA 폭동도 견뎌냈다고 하면서 인생의 굴곡마다 조금씩 더 단단해지다 보니 웬만한 일들은 버텨낼 수 있는 ‘맷집’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그 ‘맷집’ 덕분에 고난을 이기며 살았고, 고난 후에 오히려 더 큰 복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번 화재도 결국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숨 대신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그가 말한 노래는 큰 슬픔을 딛고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작곡했던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이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말러의 교향곡 2번을 들으면서 그가 말한 ‘맷집’을 떠올렸다.     맷집이 좋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쓰러지지 않을 뿐이다. 맷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고난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맷집이 있는 사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난 속에서 웃음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웬만한 어려움은 버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고난, 맷집, 웃음’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때였다. 한 목회자 세미나에서 이런 말들이 한마디로 정리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진행자가 참석자들에게 사흘간의 세미나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다섯 글자로 정리하라고 했다. 재치와 의미를 담은 다섯 글자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세미나를 마무리할 때였다.     목회 현장에서 갓 은퇴했다는 강사 목사가 후배 목사들이 고군분투하는 목회 현장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정리했다. ‘명랑(明朗)한 버팀’이라고.   그가 말한 ‘명랑한 버팀’은 고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맷집의 고급스러운 표현이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사람은 많다. 죽을 힘을 다해 견디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명랑하게 버티는 사람은 흔치 않다. 명랑한 버팀은 고난 속에서 밝음을 잃지 않는 것이고,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유쾌하고 활발하게 지내는 것을 뜻한다. 고난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세상이 어려운 것은 고난 때문이 아니라 고난으로 인해 유쾌함을 잊었고, 밝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웬만큼 살았으면 어느 정도의 맷집은 갖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명랑하게 버티다 보면 분명 좋은 일이 찾아올 것이다. 그 믿음을 갖고 오늘 하루도 명랑하게 버텨보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버팀 고난 맷집 목회자 세미나 고난 때문

2025-02-05

[이 아침에] 이 세상은 너와 나의 공존이다

모처럼 남가주에 비가 내렸다. 비 온 후라 뒷마당에 피어있는 초목들이 싱그러워 보이고, 꽃들도 아름답다. 해맑은 햇살은 더욱 정답다.   오랫동안 건조한 탓에 한동안 대형산불의 재앙이 남가주 곳곳을 휩쓸었다. 그런 때문인지 추운 겨울인데도 이번 비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츠리게 하기 보단 오히려 활짝 펴게 해준다. 혹시 꺼지지않고 남아 있을지도 모를 화마의 불씨마저 사라질 거라고 안심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사람 사는 일이 어찌 날씨나 환경에 국한되겠는가. 요사이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는 기후 못지 않게 불안하고 염려스럽다.  새로 들어선 트럼프 정부의 첫 과제가 천만 명이 넘는 불체자들의 추방 문제라니 춥고 걱정스럽다. 내 일이 아니니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에 남의 고통 앞에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떠나온 조국의 정치도 불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염려스럽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죄 명목으로 구속되어 재판중이니 이보다 더한 재앙이 없다.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릴 듯 위협한 최근 남가주 산불 같은 형국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무섭던 산불도 진압되고, 정치적 갈등도 정리될 것이지만, 재앙들이 남기고 갈 아픔의 흔적과 상처는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 몸살을 앓게 할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은 ‘너와 나’의 공존이다. 싫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고, 좋다고 해서 제멋대로 자기 생각 만으로만 살 수 없는 공동운명체라는 말이다.   마치 우리 ‘몸’의 각 기관과 조직들이 함께 어울려야 건강을 유지하듯, 우리 사회도 개인과 각 단체가 잘 소통하고 협력해야만 평화를 이룰 수 있기에 말이다.     우리 삶에서 많은 문제의  해답은 그래서 ‘다양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달려있다. 뒷마당의 정원이 아름다운 이유가 똑같은 한가지 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온갖 종류의 꽃들이 ‘함께’ 어울려 피어 있기 때문 아닐까.만약 정원에 자기가 좋아하는 한가지 꽃만 피어 있다면 얼마나 단조로울까. 마치 오래 보아온 집안의 가구처럼 더 이상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형태의 다양한 존재들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나와 다른 모습, 나와 다른 생각과 개성을 지닌 이웃이 있기에 삶이 더욱 신비스럽고 재미있고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서로 다른 성적성향이 있기에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다양성의 축복 아닌가.   외모뿐만 아니라 각자의 ‘생각’ 또한 정원의 꽃처럼 각양각색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이 다름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닌, 서로 다른 ‘다양성’의 의미다.     하여,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니는 다양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남을 비판하는 대신 마음을 열고 남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반드시 상대방의 생각에 동의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때로 비록 상대방의 생각이나 말이 내가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 해도 상대방을 비난하고 적대시하는 대신, 상대방의 처지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긍정마인드에서 나온 배려로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개방한다는 의미다.   이같은 배려로 상대방에게 마음의 문을 열면 가정에서는 물론 직장이나 사회 안에서도 많은 갈등이 해소되리라 믿는다. 이건 살면서 터득되는, 누구나 쉽게 체험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의 ‘상식’이다. 실제로  개인이나 단체의 갈등과 반목은 많은 경우 서로 다른 생각을 ‘흑/백’논리로 이분화시키려는 유혹에서 기인한다. 흑백논리 같은 이분법 사고가 개인과 사회에 만연되면, 서로 생각이 인정받지 못하기에 서로 비난하고 적대시하며 ‘패거리’현상이 벌어 질 수밖에 없게 되어간다. 그 예가 바로 우리가 떠나온 조국의 가슴 아픈 현재 정치 현안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이런 사회적 갈등의 피해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며 서로 상대방을 배척하는 당사자들에게만 국한되지않고, 함께 사는 모든 국민 몫으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이건 정말 너무나 참기 힘든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남을 인정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평범한 삶의 상식이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꽃처럼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 오늘도 간절해진다. 김재동 / 가톨릭 부제·의사이 아침에 공존 대신 상대방 정치적 갈등 사회적 갈등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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